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그리스도 / 베르메르 (1655년, 캔버스 위에 유화, 160×142cm, 영국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얀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년)는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로 매우 정밀한 화필과 함께 뛰어난 색조,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정취가 감도는 그림을 그렸다. 현존하는 작품은 40점 정도이고 ‘진주 귀고리 소녀’나 ‘우유 따르는 하녀’ 등 정겨운 인간의 모습과 따스한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2점의 풍경화와 그리스도교를 제재로 한 작품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그리스도’이다. 이 그림은 1900년 아주 우연하게 브리스톨의 한 가정에서 고미술상이 헐값에 사들이면서 발견되었다.
이 그림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베르메르의 초기 그림답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따스하고 서정적인 인간 내면의 모습을 차분한 분위기에서 드러낸다. 그림의 중심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위로 예수님께 빵을 건네는 여인이 마르타이고, 아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이 마르타의 동생인 마리아로, 루카 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시다’(10,38-42)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림의 예수님은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를 가리키면서 눈으로는 빵을 들고 온 마르타를 바라보신다.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던 마르타에 비해 복음을 받아들인 지얼마 되지 않은 마리아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마르타가 예수님과 사도들을 대접하려고 분주하게 일을 하다가 잠시 자신의 일을 더 중시하는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예수님께 드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배우고 싶어하며, 자신을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 마리아의 마음을 아셨기에 마리아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답변하신다.
이 복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 음식 접대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과 주님의 가르침을 잘 소화하고 순명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정신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 그림은 복음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마치 가족과 같이 아주 친밀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코 호화롭지 않은 평범한 가정의 서민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 사랑으로 가득한 한 가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런 따스한 서정성은 베르메르 특유의 조형적 구도와 색채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곧 이 그림은 조형적으로 가장 안정된 구도인 여러 개의 삼각형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 각자가 가진 삼각형 구도와 그 인물 전체가 구성하고 있는 삼각형, 그리고 마르타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시선과 예수님께 쏠린 두 여인의 눈길이 갖는 삼각형 구도가 그것이다. 이런 내외의 다층적인 삼각형 구도, 그 시각적 안정성에서 한 편으로는 인물들의 따뜻한 관계가 나타나며, 다른 한 편 이 이야기와 관련된 주님의 말씀이 갖는 완전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더욱이 조형적으로 이 그림은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그려지는 대각선을 중심선으로 하고 있다. 곧 마리아의 오른팔과 예수님의 오른팔을 따라 그려지는 대각선이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오르는 대각선과 일치하면서 그림의 경계선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의 얼굴이 상단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상단부는 예수님의 오른편으로 밝은 빛에 젖은 세계로, 예수님의 시선이 아름답고 찬란한 빛과 어울리면서 인간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각선의 하단부는 상대적으로 어둡게 묘사되었는데, 이 부분을 구성하는 주된 색채가 초록색이다. 이 초록색은 믿음과 신앙의 색이며 가난을 즐겨하는 사랑의 색이다. 그리고 곧 어둠을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의 색이기도 하다.
이런 조형과 색의 선율이 이 그림에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과 가족의 사랑이라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예수님의 양 옆에 존재하는 두 여인은 다만 마르타와 마리아가 아닌 모든 인간 곧 예수께서 구원의 대상으로 삼은 인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보내는 예수님의 미소를 머금은 너무도 따스하고 인간적인 시선과 선의에 가득한 손짓은 바로 우리에게 보내는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특히 각자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이들의 내면과 운명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예수님께 맛난 음식을 대접하려는 분주한 마르타의 빛에 젖은 흰색 드레스가 그리스도께 헌신하려는 그녀의 숭고한 내면과 일치하고 있으며, 붉은색과 초록색 옷을 입은 마리아의 색은 열렬한 신앙과 가난의 색으로, 죽음의 의미인 갈색과 초록색인 예수님의 옷 색깔과 합치하고 있다. 예수님의 색과 마리아의 색이 합일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예수님께서 융숭한 대접보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의지라는 것을 색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색감은 결국 세 사람의 몸짓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빵 바구니를 들고 이웃을 향해 두 팔을 벌린 것 같은 마르타와 턱을 괸 채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마리아의 상반된 몸짓 앞에서 마리아를 향한 그리스도의 손은 진정한 신앙과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적으로 감추어진 이런 조형적인 의미 이전에 이 그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사랑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감싸 안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주님의 영원한 뜻이라는 것을 따뜻하고 소박하며 인간미 넘치는 필치로 베르메르는 표현하고 있다. 베르메르는 성서의 한 일화를 간결한 필치와 따스한 인간미 넘치는 색조로 묘사하면서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를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한다. 이런 그림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한 책무가 아닐까?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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