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책형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455년경, 패널에 유채와 템페라, 58×82cm,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마르케 국립미술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세상에 그 연원과 의미는 고사하고 언제 그려진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작품들의 속내를 밝히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림과 대화를 하고 그 주변을 뒤적거리고 있는가?
15세기의 초기 르네상스를 풍미한 화가이자 수학자이며 기하학자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년경)의 ‘그리스도의 책형(The Flagellation)’도 예외가 아니다. 명확한 수학적 원근법과 시원한 공간감을 통해 표현된 맑은 색채 그리고 위엄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표현으로 유명한 피에로의 이 작품은 그 존재의 기록조차 없을 만큼 당대에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한 세기 전부터였다. 그만큼 이 그림은 오늘까지도 미술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하고 형식적으로 복잡한 그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그림의 내용이 그리스도가 유다의 배반으로 골고타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의 궁에서 책형을 받고 있는 장면이라는 견해에는 대개 수긍을 하는 편이다.
이 작은 그림 속에는 서로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놓여있다. 왼편은 책형을 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거대한 기둥을 뒤로 한 채 허리 뒤로 손이 묶여 있고, 그 옆의 낮은 연단에는 빌라도가 앉아있으며, 그의 눈앞에서 두 형리가 채찍을 가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동양풍의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다. 그림 오른편으로는 화려한 복장을 한 세 남자가 무엇인가 심각하게 논의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책형이 가해지려는 예루살렘 본시오의 궁전 내부를 보자. 궁의 내부는 호사스런 코린트 양식의 다주식(多柱式) 홀이 있는 고대의 전통 양식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궁전 오른쪽은 당시의 양식인 르네상스풍의 집과 종탑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포석이 깔린 광장이 있다. 시공을 초월한 두 세계, 두 시대의 공존이라는 공간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궁전 내부는 그리스도에게 수난과 고통의 공간이다. 그 안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열려있고 다른 하나는 닫혀있다. 열린 문으로는 그리스도가 들어왔으며, 닫힌 문으로는 그리스도가 나갈 것이다. 이처럼 이 공간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연관된 곳이다. 이 공간은 동시에 이교의 영광이 나타나 있는 공간이다. 그리스도에게 책형을 명하는 옥좌의 빌라도와 그의 화려한 복장이 그러하며, 예수를 묶은 기둥 위의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거대한 동상을 연상시키는 이교 황제의 조각상이 그렇다. 그러나 그 몸짓과 모양이 그리스도의 고요함과는 달리 번잡하고 수선스러운 것을 보니 하느님을 거역하는 이교의 영광이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문제는 내용과 시간상 이 주제와 동떨어진 오른쪽의 이야기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가운데 인물은 당시 우르비노를 통치하던 몬테펠트로 가문의 구이단토니오이며, 그 주변의 인물들은 그의 불충한 고문관들인 만프레도 데이 피오와 톰마소 델 알젤로이다. 이 고문관들은 경쟁자의 음모로 구이단토니오를 실추시키려고 보내진 인물이며, 결과적으로 그의 서자인 페데리코가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들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두 고문관에게 둘러싸인 구이단토니오를 형리에 둘러싸인 그리스도, 유다에게 배신당한 그리스도에 견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르게는 이 그림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한 뒤, 그리스도교가 겪는 고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가정한다. 이런 가정 아래 오른쪽의 인물이 당시 동양의 왕자로, 그의 무기력한 태도는 예수의 태형을 묵과한 빌라도를 가리키며, 왼편의 수염이 난 인물은 옷차림이나 착용한 모자로 보아 그리스인 외교관으로 추정한다. 이들 사이의 젊은 남자는 이들이 부추기면 비그리스도교와 기꺼이 싸울 수 있는 ‘미덕의 천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해석을 낳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그림의 주제에도 이 그림은 명증하고 확실한 하나의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수학적 조형성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당시 화가들의 관심을 크게 끌었던 선원근법이 완전하게 적용된 최초의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천장의 선과 포석의 선이 엄격한 기하학에 의거해서 한 지점 곧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세계와 두 시대가 하나로 공존하는 이 가상공간의 깊이는 14미터임이 계산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고 그림 속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신장이 17.8센티미터인데, 실제 그리스도의 키를 그 열 배로 보았던 것 같다. 이런 비례를 척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림의 가로는 17.8센티미터의 4.5배이며, 세로는 3.25배이다. 또한 전경에 보이는 두 기둥의 받침돌 사이의 거리는 그리스도의 2배이다. 이처럼 이 그림은 기하학적인 규칙을 완벽하게 적용하려는 열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그의 저서에서 수학은 인체와 건축이 긴밀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 속의 인물들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책형을 당하는 그리스도 옆에서, 아니면 시대를 달리해서 이 수난의 상황을 연상하면서 이 그림 속 인물들이 보이는 무미건조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세는 아니잖은가? 그러나 이 수학과 기하학에 숨긴 비밀은 다르다.
중세의 신학자인 토마스 데 아퀴노(1225-1274년)는 “모든 사물은 완전한 비례를 지닐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때의 완전한 비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비례 곧 8등신 등의 황금비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기하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세시대에 거대한 신의 집 곧 대성당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수학과 기하학적 지식에 따른 결과였다. 그리고 이 수학과 기하학이 인간 이성의 산물이었던 만큼, 수학과 기하학을 통해 성당을 짓고 하느님의 말씀을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토마스가 말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을 신께 봉헌하는 헌신적인 자세이며, 예술적으로는 수학과 기하학을 수단으로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하는 표현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그리스도의 책형’에 나타난 수학과 기하학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완전하고도 최상의 방법이며, 인간 자체를 봉헌의 대상으로 삼은 만큼 인간의 감정이 드러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닌가?
이처럼 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는 수학적 구성으로 보나 상징적 측면에서 보나 그림의 중심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육신은 ‘인간의 아들보다 더욱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엷은 금빛이 감도는 후광이 있고, 넓은 가슴과 건장한 몸은 고대의 미적 기준에 합치한다. 바로 수학을 통한 아름다움이 이처럼 고대의 기준에 적합할 만큼 완전한 것으로, 결국 형리의 태형이 가해지기 전의 순진무구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피도 상처도 없는 생기있고 순결하며 무구한 그리스도의 육신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조형적으로 하느님의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는 수학과 기하학이라는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표현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봉헌함으로써 더욱 강한 믿음과 신앙의 삶이라는 은총을 받게 되며, 이런 사실을 암시하는 그림이 이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책형’인 것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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