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고기잡이의 기적 / 콘라드 비츠

by 파스칼바이런 2011. 11. 30.
고기잡이의 기적 / 콘라드 비츠

 

고기잡이의 기적 / 콘라드 비츠

(1444년, 패널 위에 유화, 132x154cm, 스위스 제네바 미술역사 박물관)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콘라드 비츠(Konrad Witz, 1400?-1446?년)는 르네상스 초기에 독일에서 태어난 화가로 평생을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원근법이나 명암법, 그리고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로,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잘 대변하는 혁신적인 미술가로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는 풍경을 중시하여 특정 장소의 실제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제네바 대성당의 성 베드로 제단화인 ‘고기잡이의 기적’이다. 이 작품은 유럽 최초의 사실적인 풍경화로 꼽히는 만큼, 미술사상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적의 고기잡이 일화는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일을 적은 것이다.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은 티베리아 호수에서 밤을 지새우며 물고기를 잡고 있었으나 허탕이었다. 다음 날 아침 어떤 사람이 호숫가에서 이들을 부르며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따르자 그들의 그물은 물고기로 가득하였다. 이때 제자 중한 사람이 그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 들었다”(요한 21,1-8 참조).

 

이야기가 이런 만큼, 그림에는 노를 젓거나 그물을 거두는 제자들을 비롯해, 물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몬 베드로, 그리고 이런 경관을 아무런 당혹감 없이 지켜보는 당당한 이미지의 예수님이 보인다. 그런데 특이할 점은 이 그림의 배경이 실제 존재하는 풍경이라는 것이다. 바로 스위스 제네바의 레반 호수와 그 주변의 모습이다. 해변의 조약돌에서 멀리 있는 몽블랑 빙하까지, 호수 주변의 자연과 환경이 꼼꼼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나타나신 장소가 갈릴래아의 강이지만, 콘라드 비츠는 이 사건을 제네바 호수에서 벌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 멀리 양편에 펼쳐진 전경은 제네바 중심지에서 본 실제 몽블랑의 모습으로 한가운데 눈 덮인 빙하가 그 정상이며, 호수의 오른편 묵직한 탑 양편으로 빠져 흐르는 물길이 론 강이다. 그러면 비츠는 왜 이 성경의 일화가 제네바에서 벌어진 것으로 묘사한 것일까?

 

이 그림에 나타난 제네바 호수의 남쪽 호반은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사부아 공국에 속한 지역인데, 당시 막대한 영토를 자랑하던 유럽 맹주로서의 위용과 권세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15세기 이 도시의 지배자는 사부아 공작이었다. 그림 오른편의 거대한 탑이 이곳에 거대한 요새가 펼쳐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탑 전면의 무너진 성벽, 그 죽음의 폐허가 이 사라진 왕국의 지난 영광을 증언한다.

 

이 탑 뒤편의 늪지에 즐비한 수상가옥들과 그 뒤쪽 멀리 울타리와 장벽으로 둘러싸인 해안의 모습이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인상을 풍긴다. 호숫가에는 여인들이 빨래를 하고 있으며, 양치기는 양떼에게 풀을 먹이고 있고, 교회 주교의 목초지로 알려진 언덕에서는 궁술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천국의 온화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번창하고 강건한 왕국,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영토를 묘사한 것은 이 왕국을 지배했던 통치자의 위상을 찬양하기 위함일까? 바로 당시 사부아를 통치하던 공작 아마데우스 8세의 위상 말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바젤 공의회로 언급되는, 교회가 이교의 도전을 받은 때이다. 곧 교황과 공의회 우위설이 맞선 때로, 교황은성 베드로의 직속 후계자로 자처하였으며, 그 후원자들은 예수님께서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마태 16,18)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교황의 주장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의 반대자들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석’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교황측 주장을 맞받아쳤다.

 

이런 권력 쟁탈전의 와중에서 공의회는 로마 교황을 부정하고 대립교황을 세우는데, 이때 선출된 이가 바로 제네바의 통치자인 사부아 공작 아마데우스 8세였다. 지금 그림에서 물에 빠진 베드로의 모습은 아마데우스 8세를 모델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당시 교회가 이교와 빚었던 갈등, 일정시기 교회가 그 본연의 정신적 의무를 저버렸던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니, 배경의 화려한 경관이 과거의 영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서계신 곳이 땅이 아니라 물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어느 날 저녁 역풍에 시달리며 배에 머물러있던 제자들이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베드로는 주님께 다가가려고 했으나 겁이 나서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을 잡으시며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31) 하셨다. 이 장면은 대립교황으로 선출된 아마데우스 8세가 교황선출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망설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는 결국 펠릭스 5세의 이름으로 교황의 자리에 앉는다.

 

교황으로 바젤에 입성할 때부터 펠릭스 5세가 입었던 옷은 짧고 펑퍼짐한 소매가 있는 사부아의 복식이었는데, 이 모양이 변형되어 훗날 스위스의 국기가 되었다. 그 모양이 암시적으로 그림 후면의 왼편에 묘사된 흰색 성문과 성곽의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교회 역사상 갈등의 시간이 이 그림 속에 나타나있는 것 외에, 비츠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 곧 형상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는 중세의 이상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풍성한 볼륨감을 통해 예수님을 제자들보다 훨씬 크게 그리고 있다. 바로 예수님의 위상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 바로 위로 구름에 싸인 알프스 빙하를 넣음으로써 예수님의 승천, 구름에 떠받쳐진 예수님의 승천을 예시하고 있다. 그림의 왼편 하단에 있는 암석은 물론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반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는 교회의 상징이다. 배의 위쪽에 펼쳐진 산 아래 언덕 모습을 배를 엎어놓은 것과 같은 형상으로 배치한 것은 예수님 말씀대로 이 세상에 번성하게 될 교회의 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고기 역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아를 만난 것은 그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하신 바, 물고기는 초대 그리스도교의 은밀한 상징이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화가의 이런 의도로 보아 비츠는 하느님 세계, 곧 낙원의 실상을 믿고 전하고 있으며, 그가 두 눈으로 관찰한 속세의 욕망과 영광이 얼마나 허무하고 유한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리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 배경의 영광은 바로 하느님의 세계를 의미하는 영광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가 배가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을 보면 성채의 잔해만이 남은, 과거 세속적 영광, 일시적 광영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그 죽음의 나락으로 나아가고자 사람들이 힘차게 노를 젓고 있는 배를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물 위에 서서 가로막고 계신다. 기적의 위용으로 그분께서는 지금 남들이 나아가기를 꺼리는 진실한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것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