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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이집트에서의 휴식 / 카라바조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4.

 

이집트에서의 휴식 / 카라바조

Rest on the Flight to Egypt, 1596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oil on canvas, 로마 도리아-팜필리 미술관 소장

 

지영현 신부(가톨릭미술가협회 지도신부)

 

카라바조의 '이집트에서의 피신'은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후 그가 연이어 두 번째로 그린 종교화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이전까지 만났던 카라바조 특유의 빛과 어둠을 대비하여 표현했던 작품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아주 작은 돌 하나부터 나뭇잎의 주름 하나까지 섬세히 그려 넣고, 주변 환경 또한 전체를 꽉 채운 묘사가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헤로데에게 쫓겨 긴박하게 이집트로 피신하던 성가정이 잠시 강가 나무 밑에 앉아 편안히 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정면 중앙에서 천사가 바이올린을 켜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 오른쪽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편안히 잠들어 있습니다. 왼쪽의 성 요셉은 천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도록 악보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 요셉의 양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드러납니다. 그는 성모자 곁에서 성가정을 지켜나가는 훌륭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모자가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천사가 음악을 연주하는데, 주변의 모든 자연(하느님의 창조물)들이 합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작품을 보는 우리에게까지 그 천상의 음악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카라바조는 의식적으로 천사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목까지 흐르는 빛의 흐름을 성모자의 얼굴에까지 이어지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천사가 성가정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 전체에 어울리지 않게 보일만큼 천사의 비둘기 날개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아기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알려주는 장치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도상학적 표현방식-천사를 중심으로 좌우가 서로 대비되는 남자와 여자, 젊음과 늙음, 어두움과 밝음, 동물과 식물, 깨어있음과 잠듦-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은 하느님의 사랑이 깃든 곳이며 하느님이 맺어주신 은총의 장소입니다. 그 가정은 평생운명공동체로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이겨내고 나누는 곳입니다. 또한 가정은 항상 하느님이 함께 머무시며 하느님이 뜻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오늘 카라바조는 그 가정의 거룩함을 '이집트에서의 휴식'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