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종(안젤루스) - 밀레
1858-59, 캔버스에 유채, 55x66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말씀이 있는 그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 프랑수아 밀레(1814~75, 프랑스 바르비종파 화가)는 파리 교외의 퐁텐블로 숲 어귀에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에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따뜻함, 소박함, 인간미 그리고 넓은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또한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던 그는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박한 농민들의 소박한 삶의 양상과 노동을 표현한다. 한 농부 부부가 들판 위에서 기도하는 장면인 <만종>은 흔히 ‘이발소 그림’으로도 불린다. 이발소에 하나쯤은 걸려 있을 정도로 복제한 그림이 많다는 뜻과 그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농부 부부는 서로 마주하고 황혼이 지기 시작한 전원을 배경으로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다. 멀리 오른쪽 지평선에는 교회가 보인다. 만종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남자는 일하던 쇠스랑을 옆에 꽂아 놓고, 벗은 모자를 손에 든 채 겸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한참 동안 일을 하였는지 모자를 벗은 그의 머리에는 눌린 자국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의 짧은 바지와 헐거워 보이는 신발은 그다지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가난한 농부의 모습을 직접 알 수 있는 요소이다. 여자는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고개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다.
부부의 발밑에는 씨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다. 밀레는 처음에 이 바구니에 씨감자가 아닌 죽은 자신의 아이 시체를 표현했다고 전한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아이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난한 부부는 아이 시체를 땅에 묻기 전에 먼저 바구니에 담고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본 밀레의 친구는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사회 고발적인 그림 때문에 혹평을 받던 밀레에게 엄청난 파장을 우려하여 감자로 고쳐 그리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죽은 아이의 모습 대신 감자가 그려진다.
프랑스는 1848년 2월 혁명 이후 농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들의 생활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파리가 산업사회의 풍요로운 근대 도시로 발달하는 동안, 도시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새로운 빈곤계층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밀레는 농민의 가난하고 고된 삶을 화폭에 그린 것이다. 그러나 광활한 들판에 꿋꿋하게 서 있는 농부 부부의 모습에서는 노동의 고통보다는 멀리 지평선에서 물들어가는 저녁노을과 함께 경건한 종교적 신앙심을 볼 수 있다. 조형적인 측면에서도 그림 윗부분의 3분의 1선상에 놓인 지평선은 평온하고 안정된 분위기에 엄숙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인간과 대지의 투쟁이 끝나고 평온이 깃들 때, 황혼의 들녘에서 소박하고 쓸쓸한 기도자(농부 부부)의 엄숙함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비참하지만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물론 경건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종교화로 유명한 이 작품 이면에는 가난, 굶주림, 병마, 죽음 등 삶의 무거움과 두려움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가난한 모습과 고된 노동의 삶 속에서도 부부는 두 손을 모으고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필립 4, 4.6) 그들의 소원을 하느님께 청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