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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수태고지 - 프라 안젤리코

by 파스칼바이런 2015. 1. 3.

 

 

 

수태고지 - 프라 안젤리코

1433-34, 목판에 템페라, 175x180cm, 디오체사노 미술관, 코르토나, 이탈리아

 

 

[말씀이 있는 그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루카의 복음서는 유일하게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에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루카 1,26-38) 수태고지는 서유럽의 성경 미술 역사상 가장 많이 재현된 주제 중 하나이다. ‘수태고지’ 도상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세 가지의 요소로는 마리아, 대천사 가브리엘 그리고 마리아를 향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비둘기가 있다. 여기에 백합꽃이나 붉은 장미, 청자색 매발톱꽃이 묘사되곤 한다. 흰 백합꽃은 암수의 구별이 없어서 처녀성을 상징한다.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들은 꽃병에 백합을 꽂거나 꽃병 장식으로 묘사하곤 했다. 또한, 이들은 백합 대신 사랑과 고통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상징하는 매발톱꽃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경-1455) 역시 가장 선호한 주제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었다. 회랑 안쪽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마리아와 붉은 색에 금박의 장식이 박힌 옷에 날개를 펼친 천사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마리아는 독서 중 천사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놀란 표정보다 오히려 안정을 취하고, 두 팔을 교차하여 가슴에 모은 자세로 약간 고개를 숙여 천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미 마리아의 표정과 행동은 놀라움을 넘어 순명의 시간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리아는 로고스(logos), 하느님의 말씀이자 하느님 자체를 상징하는 책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가 하느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순종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황금문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마리아와 천사와 나눈 대화는 그녀의 지혜와 겸손, 그리고 거룩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수태고지가 담고 있는 본래 의미는 천사의 날개 끝으로 이어지는 배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최초의 한 쌍인 아담과 하와가 천사에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이미 알몸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들어 입혀주신 가죽옷(하느님의 보호의 표시)을 입고 있다.(창세 3,21) 에덴동산에서 추방은 원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재림을 위한 앞선 제시이다.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인류에게 죽음을 초래하였지만, 마리아는 순명하여 인류를 구원하게 된다. 안젤리코는 두 가지 장면을 한 작품에 결합하여 신앙적인 교육을 전달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옛 계약’은 무너졌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되리라는 것이다.

 

건물 바깥 외벽 중앙에는 부조로 표현된 성부 하느님께서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를 내려보내 마리아의 머리 위에 자리해 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영광과 힘으로 충만함을 강조해 보이고 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 이렇게 ‘수태고지’ 그림은 인간의 원죄로 낙원에서 추방되는 사건을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인류가 구원될 것이라는 구원사를 말하고 있다. 또한 성부 하느님과 빛 속에 성령의 비둘기와 함께 ‘수태고지’가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너희 귀를 기울여라.”(시편 78,1)

 

[2014년 12월 21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