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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9>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by 파스칼바이런 2016. 6. 15.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9>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평화신문 2016. 06. 12발행 [1368호]

 

 

19세기 유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영국 라파엘 전파(1848년 시작한 예술운동)의 등장과 아르누보 양식의 대두, 그리고 비올레 르 뒤크(Viollet le Duc, 1814~1879)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던 프랑스 고딕 성당의 보수 작업을 통해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중세 교회 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워크숍들을 중심으로 중세에 사용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고 이를 재현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워크숍에는 건축가, 중세학자, 화학자, 유리연구가들이 함께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포함한 중세 교회 건축의 보수 계획을 세우고 서로 협력했다. 184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의 르망대성당, 부르주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괄목할만한 기술적 진보를 이끌었고, 유리 생산에 있어서도 얇은 색유리 층을 포함한 플래시드글라스(flashed glass)와 사각 판형의 색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분업화로 예술적 조화·세심함 부족

 

프랑스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은 19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산업화, 대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형화된 공방에서 대량 생산되는 스테인드글라스들이 교회 곳곳에 설치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업화된 과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렇게 대량 생산으로 제작되다 보니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예술적인 조화를 세심하게 고려하기 어려웠으므로 상대적으로 작품의 예술적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주교좌 성당인 서울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프랑스를 통해 직접 수용됐다.

 

 

▲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1898.

 

 

명동성당 유리화 제작 비용은 어디서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제작, 설치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행히 스테인드글라스에 ‘GESTA 형제들’(GESTA Frres)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어 여러 가지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뮈텔 주교 일기를 살펴보면 명동주교좌성당 건립 당시 스테인드글라스에 관한 몇몇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제작처와 제작 비용 등에 대한 설명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봐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프랑스에서 들여오는 과정이나 그 비용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의문점이기는 하다.

 

 

▲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서명, 1898.

 

▲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서명, 1902.

 

유리화 도입에 관한 주장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유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1896년 명동대성당 건립 시 토지 문제로 일이 어려워지자 뮈텔 주교는 베네딕토 성인에게 기도하며 만일 일이 잘 해결되어 성당이 건립되면 성 베네딕토의 제단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였고, 성당이 무사히 완공되자 성인의 제단을 성당 오른쪽에 마련하고 베네딕토 성인상을 모시게 되었다. 이에 성 베네딕도회와의 연관성과 형제들이 ‘수사들’을 뜻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프랑스 성 베네딕도회의 수사들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그리고 프랑스 투르(Tours) 혹은 툴루즈(Toulouse)에서 들여왔다는 주장도 있다.

 

대구 계산성당 유리화와 유사점

 

그런데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를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찾을 수 있다. 역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대구 계산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서명이 남아 있는데, 명동대성당의 서명과 같이 ‘Gesta’가 등장한다. 다만 GESTA가 모두 대문자로 표기된 명동대성당의 그것과 달리, 첫 글자 외에는 소문자로 표현되었다는 점, 그리고 Henri Gesta fils Toulouse, France라는 좀 더 긴 서명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명동대성당에서와는 달리 프랑스 툴루즈라는 보다 정확한 지명을 확인하게 되어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출처를 밝히는 실마리를 찾는 데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