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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0>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하>

by 파스칼바이런 2016. 6. 19.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0>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하>

평화신문 2016. 06. 19발행 [1369호]

 

 

▲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탄과 삼왕 경배.

 

 

VIDIUS ENIM STELLAM EJUS IN ORIENTE VENIMUS ADORARE EUM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EUNTES DOCETE OMNES GENTES BATIZANTES EOS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위의 문장은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트렌셉트(transept) 스테인드글라스 하단에 쓰여 있는 라틴어 성경 구절이다.

 

명동대성당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의 대표적인 성당이지만 그곳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스테인드글라스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한 성당에서 100컷 이상의 많은 사진을 촬영하곤 한다. 큰 그림, 작은 그림, 아주 자세한 디테일까지 두 다리를 삼각대 삼아 촬영하고 컴퓨터 모니터로 관찰해 가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서명이나 문구, 독특한 문양 등을 발견하게 된다.

 

 

▲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는 포도나무 잎과 단풍나무 잎 등이 즐겨 사용됐다.

이는 장식 역할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구상과 추상적 표현이 함께 이루어져 있다. 앱스 쪽에 다섯 개의 긴 창에 표현된 ‘로사리오 십오 현의도’와 트렌셉트 양쪽 창의 ‘성탄과 삼왕 경배’,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는 프랑스에서 작품이 수용된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양식대로 인물과 풍경이 묘사된 구상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신자석 측창들(아케이드, 클리어스토리의 창)을 비롯한 나머지 창들은 포도 잎, 떡갈나무 잎, 백합 등을 모티프로 한 간결한 구성의 그리자유(회색계통으로만 그리는 회화기법, grisaille) 기법으로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티프인 포도나무 잎은 떡갈나무, 단풍나무 잎 등과 함께 중세 그리자유 창에서 즐겨 사용되던 나뭇잎 문양이다. 이러한 나뭇잎 문양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포도는 성경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된 비유로 하느님과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이러한 포도 잎이 신자들의 시선이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아케이드 창의 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인간과 하느님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일한 그리자유 창이지만 성당 상부 클리어스토리의 창들은 도식화된 백합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백합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가시관 한가운데의 백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클리어스토리 스테인드글라스의 백합 문양은 명동대성당의 수호성인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 문양을 아케이드보다 높은 클리어스토리에 둔 것은 ‘천상의 모후’로서의 성모님의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 꽃잎으로 나뉜 창미창. 물고기 형상을 한 포도 잎이 묘사되어 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중세의 거대한 장미창은 아니지만 작은 장미창들이 놓여 있다. 모두 8개의 꽃잎으로 나뉜 장미창에는 물고기 형상을 한 포도 잎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상징에서 숫자 8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8일째 되는 날 무덤에서 부활했으므로 ‘부활’을 상징하는 수이고, 물고기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 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명동대성당의 장미창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분들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로운 시선으로 대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제작자 서명은 어느 위치에 몇 개가 남아 있을까? 장미창은 총 몇 개이며 글 서두에 언급했던 라틴어 성경 구절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떡갈나무 잎과 포도 잎, 백합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표현되었는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창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나뭇잎, 꽃 한 송이의 그리스도교적 상징과 의미에 대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