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판관 이야기 (7)
열두 번째 판관은 단 지파 출신의 삼손이다. 40년간 이스라엘을 착취하던 필리스티아를 견제하며 20년간 판관으로 있었다. 부친은 마노아였고 모친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느 날 천사는 이들에게 나타나 아들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면서 모태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아이라 했다. 이른바 나지르인(Nazirite)이다(판관 13,5). 술 마시지 않고 머리털 깎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서약한 이들이다. 구약의 수도자들이었다.
삼손은 괴력을 지녔지만 거인은 아니었다. 필리스티아 귀족이 삼손의 애인 들릴라를 부추기며 한 말이 있다. 그를 유혹해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알아내라 한 것이다(판관 16,5). 보통 사람 몸매였기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삼손은 당나귀 턱뼈로 천명의 필리스티아인을 죽였고 맨손으로 사자를 잡기도 했다. 주님의 영이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다(판관 14,6). 이끄심이 떠나자 그는 즉시 보통사람으로 돌아왔다.
삼손은 들릴라에 빠져 비밀을 털어놓는다. 힘의 원천이 머리털에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들릴라가 머리털을 자르자 정말 힘을 쓰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잡혔고 눈이 뽑힌 채 맷돌 돌리는 노예로 전락한다. 히브리인의 판관에서 비웃음과 치욕의 포로가 된 것이다. 삼손은 지난날의 자만을 깨닫는다. 나지르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최후를 판관기는 이렇게 전한다. 하느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한 번만 다시 힘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삼손이 죽으면서 죽인 필리스티아인이 사는 동안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판관 16,30).
히브리어로 태양은 쉐메쉬(shemesh)다. 삼손(Samson)의 어원으로 보고 있다. 유목사회에서 최고의 힘은 태양이었다. 그 힘과 삼손의 힘을 함께 본 것이다. 삼손의 비밀을 알아낸 들릴라는 히브리어 달랄(dalal)이 원형이다. 미약한, 연약한 뜻의 형용사다. 허약한 들릴라가 강한 삼손을 무너뜨린 것이다. 주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이다. 판관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영이 영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마지막 판관 삼손 이야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삼손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니다. 하느님의 영(spirit)이다. 오늘날 힘을 지니려면 돈을 쌓고 권력을 가까이하며 인맥을 넓히라 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주님의 개입이 먼저다. 판관 이야기가 남긴 숨은 교훈이다.
[2016년 8월 28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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