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사울 이야기 (3)
사울이 등장할 당시 이스라엘은 12지파 연맹체였다. 율법과 계약으로 얽혀있었지만 공동의식은 약했다. 국가보다 지파가 앞선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철제무기와 전차를 앞세운 필리스티아인은 줄기차게 공격해왔다. 왕을 앞세우며 국가 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사울은 평생을 전쟁에 시달렸고 전쟁터에서 죽었다.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에 있는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것이다.
서른에 왕이 되고(1사무 13,1) 40년 다스렸으니(사도 13,21) 70세에 죽었다. 그의 세 아들도 함께 전사했다(1사무 31.6). 왕실 전체가 길보아 전투에 나섰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장남 요나탄은 왕위를 이을 왕자였다. 다윗을 없애려 혈안이 된 사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다윗과의 관계만으로 평가할 순 없는 일이다.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기록은 늘 승자 편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법. 사울이 국가조직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군주제 특성인 화려한 궁전도 없었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왕이 되어 첫 거처로 삼았던 기브아(Gibeah)는 단순하고 촌스런 요새에 불과했다.
사울은 왕후 아히노임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1사무 14,49). 요나탄은 장남이며 막내가 미칼 공주다. 그녀는 다윗의 첫 부인이 되지만 행복한 노년을 보내지 못했다. 자식도 없었다. 미칼로 인해 요나탄과 다윗은 처남 매제가 되었다. 둘은 차세대 지도자였다. 한쪽은 왕이 될 신분이었고 다른 쪽은 왕권을 위협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가까이 지냈다. 요나탄은 뛰어난 용사였다. 사울이 필리스티아인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군 주둔지 미크마스를 선제공격해 무력화시켰다(1사무 13,23).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요나탄의 모습이다. 이후 군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고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요나탄이 죽자 다윗은 애절한 노래를 남겼고(2사무 1.17-27) 왕위에 오른 뒤에는 후손을 도와주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유대인들에게 전설적 교훈이 되었다.
사울의 어원은 히브리어 샤알(shaal)이다. 요구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원형이다. 사울을 희랍어로 옮긴 것이 바울로스(바오로)다. 사도 바오로의 원이름도 사울이었다. 그런데 그는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로마식 이름도 함께 사용하였다. 그것이 바오로(바울)였다. 회개 후 개명한 이름이 바울이었다는 것은 바른 지식이 아니다.
[2016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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