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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의 세계] 다윗과 압살롬 (2)

by 파스칼바이런 2017. 1. 16.

[성경의 세계] 다윗과 압살롬 (2)

 

 

 

 

압살롬 반란에 다윗도 전투참가를 원했지만 군사들은 말린다. 다윗은 과격하게 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2사무 18,5). 그렇지만 다윗진영은 기선을 잡고 반란군을 친다. 전사자가 이만 명에 다다르자 압살롬은 후퇴하다 붙잡힌다. 병사들은 임금의 명을 기억하고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요압은 그를 살해하고 시신은 숲속에 묻고 돌로 덮었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가다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붙잡힌 것으로 되어 있다(2사무 18,9). 정말 그랬을까? 당시 노새는 고급 승용차로 왕실의 탈것이었다. 그런 노새가 압살롬을 나무에 달아놓고 가버린 것이다. 왕위가 거부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압살롬이 나무에 달린 것도 상징이다. 나무에 달린다는 건 하느님의 저주를 의미했기 때문이다(신명 21,23). 모두 후대의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승전소식과 함께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통곡한다(2사무 19,1). 왜 울었을까? 밧 세바에 빠져 우리야를 죽였을 때 다윗은 보속을 받았다. 밧 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죽은 것이다(2사무 12,18). 다윗은 압살롬 죽음도 그 연장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죄 때문에 반란을 일으키다 살해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이 죽어야 했다며 눈물을 흘린 것이다. 요압이 끼어든다. 반역한 아들인데 왜 이토록 슬퍼하는 겁니까? 왕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운 병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다윗은 마음을 추스른다.

 

반란은 다윗이 통일왕국 왕이 되었음을 대외적으로 알릴 때 일어났다. 통합을 반대하던 이스라엘이 합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민족의 일치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살롬을 지지했던 이스라엘 지파는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인다. 다윗도 화답하며 압살롬 군사령관이었던(2사무 17,25) 아마사를 지휘관으로 받아들인다. 어정쩡하게 남아있던 병사들을 흡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벤야민 지파 세바(Sheba)가 또 난을 일으킨다.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진 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외쳤다. 다윗에게서 무얼 바라겠는가? 이스라엘아 돌아가자(2사무 20,1). 다윗은 강경 진압으로 나갔다. 압살롬 난에서 초기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이 반영된 것이다. 반란군은 이스라엘 최북단까지 밀려갔고 아벨 벳 마아카(1열왕 15,20)에서 세바는 살해된다. 이후 반란은 없었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자 북쪽은 기어이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갔다.

 

[2016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가톨릭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