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 인문학적 독서
<중세>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의 책 속에 있다 그러나 당신이 증언하지 않는 어떤 모서리들의 각도 때문에 당신의 문장은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회중시계나 낡은 의자처럼 고지식해서 나는 공중을 떠돌거나 초원의 코끼리처럼 유랑할 수밖에 없다
가령, 담청색 제비꽃의 기원과 연애에 관한 담론에서 어떤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순례자처럼 몇 개의 산맥과 해저를 떠도는 동안 한 세기가 흘러갔고 당신이 망설이는 동안 세상은 난해해져 갔다
누군가 하염없이 슬픈 턱을 괴고 앉아 벽화 속 남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당신이 세워올린 각(角)이 명증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시 한 세기가 흘러가는 일과 같을지도 모른다
중세는 마치 고전 같은 것이지만 그곳은 공중에 놓인 난간과 같아서 나는 그리로 건너갈 수 없다
삶이, 먼지투성이 낡은 장부와 같다 하더라도 중세로 가는 길은 당신의 책 속에 있다
계간 『모:든시』 2017년 가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연아 시인 / 나의 애인은 푸르스름한 말과 함께 있네 (0) | 2019.03.17 |
---|---|
황주은 시인 / 난나 바나나 (0) | 2019.03.17 |
안정옥 시인 / 내가 안정옥, 하고 불러 줄 때가 있어 (0) | 2019.03.16 |
문설 시인 / 바람박물관* 외 2편 (0) | 2019.03.16 |
최서림 시인 / 그 남자네 집 (0) | 201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