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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내가 안정옥, 하고 불러 줄 때가 있어

by 파스칼바이런 2019. 3. 16.

안정옥 시인 / 내가 안정옥, 하고 불러 줄 때가 있어

 

 

        상심에 지친 몸 속 한 부분이 가득차서

        무슨 말이든 내게 간절하게 해주고 싶었어

        우선 뚜벅뚜벅 아닌 출렁출렁 걷고 있는

        나를 불러 세워야 된다고 생각 했어

        이 자식아, 그건 아닌 듯 해

        정옥아, 나는 나와 그렇게 살갑지는 못해

        남이 부르듯 안정옥, 하고 불렀어

        고심하며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도 있었어

        지금은 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 틈에서 살아

        내가 내 이름을 불러준 이후부터

        뱀 같은 혀들이 다알리아꽃으로 물들일 때

        더 애타게 불러주었어

        몇 번 하다 보니 서먹하던 감정도 사라져

        내 자신을 나처럼 믿었던 암시,

        나와 내가 함께 하는 분위기가 되었어

        마음을 너에게 맡겼듯 이젠 나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어

        내 이름은 오랫동안 나를 먹고살았잖아

         

        실수해도 내 이름은 푸드득거려선 안돼

        온갖 방법을 쓰며 누구나 온전해지기를 꿈 꿔

        자기와의 싸움에 이렇게 장기간 끌려 다니는

        이는 사람뿐 일거야

        이렇게 힘든 고독에게 평생 먹여줘야 하나

        남도 아닌 내가 나를 수없이 겨냥한다는 건

        곤혹스런 일이긴 해

        그러니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이렇게라도

        불러줘야 해

        안정옥, 그러나 세상 너무 멀리는 가지 마,

 

계간 『시인수첩』 2018년 가을호 발표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와 『나는 독을 가졌네』(1995), 『웃는 산』(1999), 『아마도』(200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