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시인 / 무한상상력의 동질적 또는 이질적 인식의 시적 형상화 정호(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 강영은 「동물성」 ( 『포지션』 2018 가을호) - 김나영 「4월1일」 ( 『웹진 시인광장』 2018 5월호)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하는 예술이다. 언어를 재료로 함으로써 시는 작자나 독자에게 다양한 기능으로 작용한다. 시로 표현되는 언어 행위들은 사회적 산물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개성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쓰이는 언어는 일상어이면서 비일상적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낯익은 듯 낯선 언어가 일상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참신성은 독자를 한껏 매료시킨다.
강영은의 시 「동물성」과 김나영의 시 「4월 1일」을 읽으면 시는 쉬운 언어로 이미지를 제시하는 보여주기(showing) 시학의 창조적 상상력임을 확인할 수 있다.
1) 대상과 화자의 동질적(homogeneous) 인식
강영은의 시 「동물성」은 일순 낯선 듯하면서도 그 명료한 발상에 눈길을 주게 된다. 죽은 듯이 움직임이 없는 그 대상에 동물적(실은 동물이지만) 생기를 불어넣고, 화자도 그 대상에 동참하는 이 동질성으로 독자를 은밀하게 시의 세계로 끌어들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구분되지 않는 우리를 무리라 부른다
당신과 헤어지면 나는 나라는 개인(個人), 나를 꽃잎이라 부르면 당신은 바깥쪽은 무르고 속은 단단한 꽃잎
당신이 내게 보석이면 당신이 탄생시킨 나는 뼈대 있는 보석 중 하나가 된다.
당신의 언약과 손가락을 사랑할 때 겨울과 봄이 동거하는 3월이 오고, 3월에 태어난 바람은 방황하는 개처럼 피부병을 앓는다.
진실되게 서로의 상처를 핥는 우리는 길을 잃고, 몰려드는 두 팔과 두 다리에 겁을 먹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 너울거리는 이, 격렬한 춤
이러한 감정을 적폐라 부를 때 구태여 삼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위태로운 절벽을 소화한다
꽃도 짐승도 아닌 이미지를 소화한다는 것,
식물적인 상상을 한입에 털어 넣고 죽은 우리는 그저 골격이라 불리지만 통점을 자극하면
조금 더 크게 이빨을 드러내는 우리라는 무리,
죽음에 이르러야 깨우치는 동물성에 대해 날마다 이별하는 당신과 나는 산호다 자웅이체다
- 강영은의 「동물성」 ( 『포지션』 2018 가을호)
1연, ‘구분되지 않는 우리를 무리라 부른다’에서 ‘우리’와 ‘무리’를 겹쳐 놓았다. 이것만 봤을 때 독자는 흔한 언어유희로 착각하고 시의 긴장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러나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어나간 독자는 그것이 언어유희를 가장한 대상의 본질적 상징이라는 걸 알게 된다.
2~3연, ‘나를 꽃잎이라 부르면 당신은 바깥쪽은 무르고 속은 단단한 꽃잎’이고, ‘당신이 내게 보석이면 당신이 탄생시킨 나는 뼈대 있는 보석 중 하나가 된다’란 시문에서는 더욱 긴장의 끈을 조이게 된다.
6~8연, ‘우리끼리 있을 때 너울거리는 이, 격렬한 춤’은 어떤 희락의 춤인지 궁금해지며, ‘꽃도 짐승도 아닌 이미지를 소화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형상화한 것일까. 남녀의 성적 환타지를 그린 걸까. 단지 미학적 표현주의로 시를 이끌어 온 것일까. 그런 의뭉스런 생각은 9~11연에서도 이어진다. ‘식물적인 상상을 한입에 털어 넣고 죽은 우리는 그저 골격이라 불리지만 통점을 자극하면’ ‘이빨을 드러내는/ 우리라는 무리‘라고 묘사하면서 한 번 더 ‘우리’와 ‘무리’를 겹쳐 놓는다. 이 부분이 긴장의 최고점이다. 화자에게 끌려들어간 수수께끼 같은 이 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지막 울림으로, ‘죽음에 이르러야 깨우치는 동물성에 대해 날마다 이별하는/ 당신과 나는’ 바로 ‘자웅이체’인 ‘산호’라고 끝 연에 가서야 비로소 그 본성을 밝힌다. 화자의 고도로 응축된 기교이자 시적 상징이다. 이렇게 화자와 산호는 동물적 동질성으로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전달한다.
그런데 제목이 「동물성」이다. 제목을 「산호」라고 하면?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수수께끼가 되어 긴장도 없고 알레고리로서의 상징성도 떨어진다. 일반 사람들은 산호를 나무같이 자라는 식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산호는 본래 동물이라는 것을 제주 출생의 이 시인은 정확히 알고 있다. 수중의 생물을 잡아먹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동물이고 자웅이체다. 암컷에서 배란된 난자와 수컷에서 배정된 정자가 물속에서 수정이 이루어져 해류에 밀리다 생장에 적합한 해저의 바위에 접착하여 무리를 이루어 자란다. 주로 수온이 높은 열대해류, 태양광 영향을 받는 수심이 얕은 지역에서 자란다, 가끔 산호가 없던 곳에서 산호무리가 발견되는 것도 산호가 배란을 하는 동물이라는 걸 뒷받침한다. 이런 산호의 본성과 생태를 감성적 이미지로 시화해낸 그 발상이 산뜻하다.
시를 다시 들여다보자. 첫 시작부터 ‘구분되지 않는 우리를 무리라 부른다’라고 낯선 말 걸기를 시작한다. 누가 산호의 암수를 구별하겠는가? 군락을 이루어 살아가는 산호의 생래적 상징에서 ‘우리’와 ‘무리’가 어찌 언어유희뿐이겠는가.
강영은은 시 「녹색비단구렁이」에서처럼 「동물성」에서도 카타르시스적 동질성으로 시에 동물적 생기를 부여하여 독자에게 이렇게 미적 감각의 서늘한 촉수를 느끼게 한다.
2) 대상과 화자의 이질적(heterogeneous) 인식
경제가 어렵다고 온통 난리다.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시대에 세속에 물들어, 아니 세속에 물들지 않아도 시 같은 거짓말 하듯, 거짓말 같은 시 농담 같은 시 한 편 꿈꿔도 좋으리라. 김나영의 시 「4월 1일」을 읽으며 시인처럼 나날이 4월 1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매일 매일 4월 1일을 살고 있네. 넘겨도 넘겨도 나의 달력은 4월 1일이 거짓말처럼 반복되지. 거짓말로 눈을 뜨고 거짓말로 배를 채우고 거짓말을 순산하는 그런 패턴이지. 처음으로 발설하는 이 고백만큼은 참말이네. 거짓말로도 한 생이 무사히 흘러가더군. 그런데 말이야, 무사한 만큼 매일 매일 패배당하는 것 같은 기분, 당신은 이해돼?
싫은 것을 좋다하고, 좋은 것은 싫다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억지로 가고, 싫은 사람 싫다 못하고, 좋은 사람 좋다 못하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울었지. 멍든 몸을 빌린 의상으로 가리고 연기하는 단역 전문 배우처럼,
나는 나를 빗나가네. 수천 개의 입술을 형광등 교체하듯 살고 있네. 몸과 마음에 거짓말을 버터처럼 처바르며 살고 있네. 내 생이 치렁치렁한 사방연속무늬 새빨간 거짓말이네. 한 번쯤은 탄로 날 만한데 두꺼운 분장 밑에 잠식되어가는 나의 맨얼굴. 치욕은 그런 것이더군 - 반성도 없이 하루가 가고 그런 내가 낯설지도 않는,
거짓말은 거짓말로 통하더군. 통이 점점 커지더군. 당신과 내가 같은 패거리이거나, 세상이 우리를 검은 페이지에 배치했거나, 세상과 내가 한통속이거나. 이상하지? 내 삶이 질 나쁜 스토리인데도 나는 날마다 무사하게 저녁에 도착하곤 하지. 내가 나를 밀어낸 자리, 거짓말은 거짓말을 비린내처럼 품어주고, 우리의 밤은 아침을 향해 검은 하수처럼 묵묵히 흘러가고,
뭐? 만우절을 위해 준비한 거짓말 아니냐고?
- 김나영의 「4월 1일」 ( 『웹진 시인광장』 2018 5월호)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은 말이 아닐까. 말로서 의사를 표현하고 말로서 소통하고, 때로는 말로서 불화가 생기고 역사가 이루어지고. 그 말에서 생긴 글자는 또 어떤가. 글자로서 기록 보관 전달 창조되는 문명은 또 어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말에서 생성된 소품이다.
말에도 여러 가지다. 참말 거짓말, 가는 말 오는 말, 듣기 좋은 말 싫은 말, 진솔한 말 허황된 말, 고운 말 비속한 말, 금언 격언 잠언, 토속어 지방어 표준어, 말 같은 말 말 같지도 않은 말, 김나영 조(調)로 한다면, 이래서 말이 말이라는 말. 당신은 이해돼?
해마다 한 번 돌아오는 만우절은 말잔치의 극치다. 누구나 만우절 때 속아 넘어간 기억이 있으리라. 필자도 시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급우가 내게 담임이 부르신다기에 부리나케 교무실로 뛰어간 적이 있다. 여학교에 재직 시엔 이웃학급끼리 바꿔 앉은 걸 모르고 설명에 열중하다가 학생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얌전하게 눈알만 말똥거리는 걸 보고야 알았다. 4월 1일이라면 이렇게 옛 추억에 잠기며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추억은 항상 아련한 꿈이다.
김나영의 시 「4월 1일」에서도 화자는 4월 1일을 꿈꾼다. 꿈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을 4월 1일로 살고 있다고 실토한다. 그렇게 실토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랬다가는 ㅁㅇㅈㅈ. 그래서 그 꿈을 시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을 4월 1일로 살고 있다고 능청스런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1연을 보자. ‘거짓말로 눈을 뜨고 거짓말로 배를 채우고 거짓말을 순산하는’ ‘처음으로 발설하는 이 고백만큼은 참말’이라는 데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게다가 ‘무사한 만큼 매일매일 패배당하는 것 같은 기분’엔 독자는 공감할 것이다.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시적 대상은 화자 자신이다. 객관화된 시적 화자와 주관적 내적 자아와의 이질적 인식에서 시는 발화한다. 2~4연에서 ‘싫은 것(화자의 인식)을 좋다 하고(자아의 인식), 좋은 것은 싫다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몸과 마음에 거짓말을 버터처럼 처바르며 살고 있’는 화자의 생은 이질적이며 ‘치렁치렁한 사방연속무늬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 번쯤은 탄로 날 만한데’도 두껍게 위장되어 있다. 그렇게 ‘거짓말은 거짓말로 통하’고, ‘내 삶이 질 나쁜 스토리인데도 나는 날마다 무사하게 저녁에 도착하곤’ 한다. ‘우리의 밤은 아침을 향해 검은 하수처럼 묵묵히 흘러가’는, 그렇게 다시 4월 1일이 되풀이되는 일상. 이 모두가 ‘만우절을 위해 준비한 거짓말’이 아닌 참 일상이라는 이질적 인식으로 독자를 현혹한다. 화자의 거짓말이 독자를 또 다른 인식의 논거로 끌어들였다면 화자의 거짓말하기는 일단 성공이며, 그제야 거짓말은 거짓이 아닌 참말로 둔갑한다. 독자 여러분도 진정 매일을 즐거운 해프닝이 일어나는 4월 1일로 살고 싶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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