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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믿음보다 강한 사랑

by 파스칼바이런 2020. 10. 26.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믿음보다 강한 사랑

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0.25 발행 [1585호]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고생하며 마음을 움츠리고 살다 보니 계절의 작은 변화를 살피는 재미도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가을은 속절없이 아름답게 깊어만 간다. 이제 올해 남은 두 달은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최소한 할 것은 하면서 은총 속에 살아보았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합의된 안전 위주의 일상에만 매달려 살다 보니 이제 믿음 생활은 고사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말도 매우 어색하게 들리는 듯싶어서 더욱 그렇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다. 당시 유다인들은 인간 삶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중요한 것 248개, 비교적 덜 중요한 것 365개 등 613개의 율법을 규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것들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기들이 정해놓은 율법의 중요도에 대한 기준이 너무 모호해서 때때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며 무엇이 더 중요한지 다툼이 있었기에, 가장 중요한 계명,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계명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놓치고 있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셨다. 오직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수백 가지의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고, 그 사랑이 모든 율법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신다.

 

사실 율법 교사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가 정당하고 옳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질문을 했던 것이다.(루카 11,29)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구하고자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가 옳다는 것을 예수님께 확인받고 싶어서 ‘자기 사랑’이 넘친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장)에도 나오는 교만한 유다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신자로서의 행함은 없이 드러냄만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율법 교사의 이중성을 심하게 꾸짖으시며, 우선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버려야만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이것은 율법과 믿음으로 공고히 산다 하여도 자기를 내려놓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사랑은 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율법 교사들처럼 자신의 믿음이 종교화되어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살피면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더욱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을 항상 실천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강하더라도 그 위에 사랑이 더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에 떨어져 더욱 완고해지고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