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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11. 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 파견되는 사도들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1.08 발행 [1587호]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다. 그리스어로 ‘하기오스’,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평신도라는 말은 ‘거룩한 백성’, ‘하느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신자’(로마 1,7), ‘아버지 하느님께 복받을 사람들’(마태 25,34),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로마 1,6) 등 신앙 안에서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평신도에 대한 정의 가운데 진정한 의미 하나를 선택한다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1테살 5,6-8)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들은 대체로 주일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흩어져 한 주간을 세상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올바른 평신도의 삶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미사가 끝나고 서로 흩어진 후에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평신도들이 각자 신앙의 공동체에서 흩어진 후에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수행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사도 8,4-6)

 

하느님께서 주일마다 평신도들을 당신 교회로 모으시는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미사와 전례만을 행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평신도들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다시 세상으로 흩어지는, 아니 ‘파견’되는 주님의 사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섭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평신도들은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지체로서 공적 예배와 신앙 고백을 통해 신앙의 성장과 더불어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세상에 나아가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자들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다(에페 1,23). 이 말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평신도’이기에 교회의 모든 일을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비조직적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교회론을 통하여 평신도라는 말이 교회에서 사라져야 교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평신도라는 말이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사목자에게 전가시키고 자신들은 이 책임을 회피하는 용어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비유로 알려주셨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마태 25,10ㄴ)는 말씀이다. 등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안심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결국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평신도 사도로서의 복음적 삶과 선포를 통하여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잔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겠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