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성탄 대축일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사랑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12.25 발행 [1594호]
어느 주일학교의 성탄제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빈방 있습니까)’이라는 성극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을 방문한 마리아와 요셉이 따뜻한 방을 구하기 위해 여관들을 전전하는 장면에서, ‘여관주인 3’ 역할을 맡은 아이의 대사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요셉이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 “혹시 머물 방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쌀쌀맞은 태도로 “방 없어요!”라고 말하면 되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아이의 순서가 지나갔고 그 아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가 머물 방이 있는지 물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은 여관주인에게로 쏠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혹시라도 대사를 잊은 것은 아닌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대본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셉. 여기 빈방이 있어요.”
아이는 대사를 잊은 게 아니었습니다. 연극에서 맡은 배역과 자기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기마저 요셉 일행을 문전박대하면 예수님이 추운 날씨에 너무 고생하실까 걱정돼, 오랜시간 열심히 연습한 배역을 망쳐가면서까지 예수님 일행을 맞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이 아이처럼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기념하는 미사에 참여할 시간에, 지인들과 ‘성탄절 파티’를 여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선물을 주는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많아도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잔치’를 지내면서도 그 잔치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그분의 탄생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그런 모습은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지요. 아니, 그땐 그 이유가 ‘오해’와 ‘미움’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유가 ‘무관심’ 때문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우리의 무관심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그분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살과 피를,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기꺼이 떠안으신 것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을 걱정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하며 돕는 일은 작은 희생과 사랑만으로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직접 그 가난을 겪으며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누리던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다하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목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를 바치시기 위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 ‘사랑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복된 권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봉헌하신 희생 미사를 기념하고 그분 덕에 구원받게 되었음을 기뻐하자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하느님께서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늘 새롭게 태어나시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본능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내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탄생’을 이룰 때 비로소 하느님과 하나 되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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