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주님의 참된 권위를 드러내는 삶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1.31 발행 [1599호]
‘기도만’ 하면 잘못을 용서받고 그 잘못이 초래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히거나 버스에서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내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받고 상황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로 인해 상처 입은 그 사람을 돌보지 않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나중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만 해주면 그걸로 충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기도로 때우려고’ 듭니다. 나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기 싫고 남들 앞에서 아쉬운 소리도 하고 싶지 않으니 하느님 당신이 대신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 때문에, 신앙 때문에 자기가 불편하고 힘들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면 바로 하느님과 선을 긋습니다.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삶에 관여하고 간섭하느냐고, 그러면서 ‘이제부터 나는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더러운 영’이 그런 모습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더러운 영의 모습은 하느님과 단절된 모습으로, 그분의 뜻과 무관하게 제멋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심각한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인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제 욕망만 채우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내가 내 돈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넌 뭐 얼마나 대단하고 잘났기에 함부로 남의 일에 간섭하느냐며, 너랑 내가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일 뿐이니 너나 잘하라며 타인을 밀어내고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게 지금 당장은 쉽고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단절’이 심화될수록 ‘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되어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더러운 영’이 주님께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느냐’고 묻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된 모습으로 살다 보니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징벌하고 단죄하며 파멸로 이끄는 ‘심판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것들이 어렵고 불편하며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절대 우리를 괴롭히거나 벌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이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정말 그대로 다 실천했다가는 큰 손해를 보고 사람들에게 바보취급을 당하며 더 나아가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까 걱정되어 망설여진다면, 그래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주님의 뜻은 내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만큼 내 마음이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따르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따뜻한 연민으로 소통하시며, 삶의 체험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분의 뜻을 따르고 싶다는 순수하고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지니신 ‘관계의 권위’이자 ‘삶의 권위’인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에게서 드러나는 참된 권위를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행동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닌 참된 권위가 드러납니다. 국과 밥은 함께 먹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듯, 신앙은 삶과 함께 가야 그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
'<가톨릭 관련> > ◆ 성 경 관 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묵상] 하실 수 있습니다! (0) | 2021.02.06 |
---|---|
[신약성경] 사도행전 읽기 (19) (0) | 2021.02.02 |
[말씀묵상] 주님 말씀 경청하며 사랑의 일치 다짐합니다 (0) | 2021.01.31 |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0) | 2021.01.25 |
[말씀묵상] 매력적인 교회 (0) | 2021.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