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하>

by 파스칼바이런 2021. 4. 6.

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사흗날에 부활하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4.04 발행 [1607호]

 

 

 

▲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약 성경이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초월적인 사건이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이다.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대사제의 기도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을 마치신 다음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라고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기도’(요한 17장)를 바치셨다.

 

예수님의 ‘대사제의 기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의 ‘속죄일 의식’(레위 16; 23,26-32 참조)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속죄일에 대사제는 자신과 자기 집안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숫염소 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숫양 한 마리와 황소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친다. 속죄 예식을 주례하는 대사제는 한 해에 단 한 번 하느님 앞에 나아가 “야훼”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른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속죄받고 ‘거룩한 백성’의 자격을 회복한다. 이처럼 인간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로 곧 바쳐질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믿는 이들을 위해 ‘대사제의 기도’를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신다.(요한 17,3)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9)라고 청하신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다.

 

겟세마니에서 잡히시다

 

대사제의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니로 가셨다. 때는 보름, 니산달 14일 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밤에는 베타니아로 가서 묵으셨지만, 파스카 만찬을 하신 이 날은 성 안에 머무셨다. 그리고 묵묵히 제자들의 배반과 수난을 마주하셨다.

 

겟세마니는 올리브 산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 정원으로 들어가시어 제자들을 두고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가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뇌에 싸여 피땀을 흘리시면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며 기도하셨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히브 5,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홀로 마지막 외로움,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다. 여기서 죄와 모든 악의 나락이 그분 영원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밀려들었다. 여기서 그분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전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인간 본성의 모든 저항을 스스로 이겨내시고서야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곧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내어 맡기신다.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겟세마니 밤기도가 모두 잠들어 있던 제자들에게 조명받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몰고 온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최고의회와 빌라도 앞에 서시다

 

예수님을 체포한 이들은 주님을 먼저 한나스에게 끌고 간 다음 대사제 카야파에게 보냈다. 한나스는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으로 서기 6년부터 15년까지 대사제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와 카야파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매질과 조롱, 모욕을 당하셨다. 날이 밝자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으로 끌고 가 심문한 다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

 

최고의회 의원들과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오?” “유다인의 임금이오?”라고 심문하면서 또 한 번 모진 매질과 조롱을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명료하게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라고 말씀하신 후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대사제 카야파는 자기 옷을 찢었고, 최고의회 원로들은 모두 “사형받아 마땅하다”고 예수님을 단죄했다. 빌라도 역시 예수님께서 반역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

 

십자가형으로 죽으시다

 

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증언한다. 이미 성전 경비병들과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며 매질로 기진맥진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처형장까지 가시면서 세 부류의 조롱을 다시 받으셨다.

 

먼저,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께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마르 15,29-30)라고 조롱했다.

 

둘째 부류는 최고의회 구성원들인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 27,42-43)라며 예수님을 향해 빈정거렸다.

 

셋째 부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였다. 그는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라고 주님을 모독했다. 예수님을 조롱한 세 부류는 예수님 수난의 장본인들이다. 곧 죄인인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아침 9시에 못 박히셨다고 한다.(마르 15,25) 그리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마르 15,33) 예수님께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고통을 겪으시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큰소리로 외치신 후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셨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로부터 인류를 새로운 교회 공동체로 모으신다.

 

묻히시다

 

네 복음서는 의회의원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해 자기 소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다고 한다. 요셉은 아마포를, 니코데모는 몰약과 침향이 섞인 향유 백 리타라를 구입해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루카 23,55) 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다인 장례 관습에 따라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

 

부활하시다

 

예수님의 장례를 지켜본 여인들은 안식일 다음 날인 주간 첫날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 최종적으로 장례를 마무리하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사흗날에 부활하신 것이다. 사실 빈 무덤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 무덤을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 조차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긴 것으로 여겼다.

 

부활의 결정적 증거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오시어 그들과 함께 40일을 지내시며 먹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13-22)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