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성령의 은총이 구원의 약이 되도록 성령 강림 대축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5.23 발행 [1614호]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중하고 유용한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본래의 용도에 맞게, 필요한 때에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고 그저 가지고만 있는 모습을, 그래서 그 물건이 지닌 참된 쓸모와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물건만 ‘똥’이 되는 게 아니라, 은총도 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주셨음에도 자신이 어떤 은총을 받았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남이 받은 것을 부러워하기만 하며, 왜 나한테는 저런 것을 주지 않으시냐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게 자기가 받은 은총을 ‘똥’으로 만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은총이 ‘똥’이 되는 것보다 우리 영혼에 더 해로운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은총이 ‘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내가 받은 은총에 교만한 마음이 더해질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자기만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고 착각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은총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려고 할 때 그것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독’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성령 강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 가지를 기대합니다. 하나는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놀랍고 신비로운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하고 뛰어난 능력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은 놀라운 신비 체험을 시켜주시기 위해서도,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능력을 주시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의 사랑으로 변화되도록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을 받아 걱정과 두려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과 행복, 참된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성령의 이끄심에 잘 따라가고 있는지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을 받아 누리는 이들은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또한, 상대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참된 평화와 일치는 나와 다른 상대방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함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런 모습이 오늘의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도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찬미하는데, 그 내용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 ‘자기 언어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한 가지 언어로 획일적으로 통일하는 게 편하다는 인간의 논리를 따랐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의도에 순명했기에 각자의 고유한 다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같은 관점에서 교회는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완성’의 단계에 이른 ‘성인’들만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다른 형제자매의 허물과 잘못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성당 다닌다는 사람이 왜 저래?’라고 비난하며 배척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단점을 사랑과 이해로 끌어안고 내가 지닌 장점과 강점으로 채워줌으로써 모두가 함께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도달해야 할 완성된 상태, 즉 ‘공동선’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은 평소에 ‘용서’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단지 몇 번 참아주고 견뎌주는 ‘인내’와는 다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가 지은 죄와 내가 용서하지 않은 죄가 그대로 남아 모두가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용서를 미루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즉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은총이 ‘똥’이나 ‘독’이 되지 않고 구원을 위한 ‘약’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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