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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결단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3.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결단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8.22 발행 [1626호]

 

 

 

 

아이유, 임슬옹이 부른 노래 ‘잔소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니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부모님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든, 친구 혹은 연인 사이에 하는 말이든 우리가 ‘잔소리’라고 부르는 그 말은 ‘뻔한’ 내용이라 듣기 싫고, 어떨 때에는 아픈 부분을 찌르기에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 나 잘되라고 하는 말입니다. 어차피 안 들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잘못된 선택을 해 상처받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마음 아파서 그것이 ‘잔소리’가 될지라도 안 할 수가 없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그분 말씀이 ‘잔소리’로 들렸나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많은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듣기 거북하다’는 반응을 보이지요.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예수님께 기대하고 바라던 바와 다르고 양심에 찔리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듣기 좋고 달콤하면 좋겠지만 듣기 거북하거나 귀에 거슬릴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돈을 더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은 외면하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직역하면 ‘이것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돌의 잘못이 아닙니다. 앞을 살피지 않은 탓이지요. 우리가 예수님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그분 말씀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욕심과 고집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보지 않고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는 우리 탓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듣기 불편하다는 것은 그것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반증입니다. 그 말씀은 내 마음의 해로운 생각들을 쳐내기에 아프지만, 그만큼 나에게 꼭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그러니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말씀일수록 그것을 내 삶과 연결해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듯’, 귀에 거슬리는 그 말씀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영약’이 될 거라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도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결단하라고 하십니다. 그들도 예수님 말씀에서 불편함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임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마당에 이제 와 그분을 떠나봐야 딱히 뾰족한 수도 없어 떠나지도 못하고 뭉그적대고 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태도로는 구원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없기에, 단호한 결단으로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지금 제자들이 마음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그것을 택할 만큼, 예수님과 함께 누릴 기쁨과 영광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는 오직 예수님께만 있고, 예수님이 아니면 다른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한 ‘투신’을 의미하며,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에 한눈팔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만 믿고 따르기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믿음이란 ‘보장된 미래’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위험과 어려움, 고통과 불편 속으로 뛰어드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