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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9.

[말씀묵상]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연중 제26주일

제1독서 (민수 11,25-29)/제2독서 (야고 5,1-6)/복음 (마르 9,38-43.45.47-48)

가톨릭신문 2021-09-19 [제3262호, 15면]

 

혼란스럽고 가혹한 세상에서도

주님 뜻 따르는 신앙인의 삶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믿음으로

힘없는 이웃에게 사랑 베풀길

 

 

순교자 성월의 첫날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여 기도했던 교회는 이제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기립니다. 이렇게 거듭, 가난한 이웃과 지구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이라 싶어서 마음이 저릿합니다.

 

하느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뜻 안에서 기쁘게 감사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왜곡했고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며 무시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인간의 오만과 오판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입니다. 강자 독식의 세상 법칙은 오늘도 힘없는 이들에게 가혹하기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국을 등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바로 인류의 민얼굴입니다. 놀라운 과학 문명을 이뤄낸 세상의 민낯입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갖은 재해와 수해 소식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신음하고 있는 땅과 하늘의 비명입니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사명은 명백합니다. 그 무엇보다 앞서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원해야 옳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기도야말로 주님의 도우심을 땅에 임하게 하는 튼튼한 동아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차별화 된 삶이야말로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40년 광야 생활은 모세에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수월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우리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것입니다. 도무지 아닌 짓거리에 매달려서 어둠 속에서 헤매는 세상을 위해서 모세처럼 주님께 납작 엎드려 빌고 은혜를 청하는 통 큰 믿음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힘든 세상이기에 더욱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처럼 세상을 위한 중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세상의 죄를 고백하며 세상의 죄를 보속하며 세상을 위하여 ‘이 죄인’을 먼저 때려 주십사 청하는 담대한 믿음을 기꺼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독서에서 만나는 모세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의 모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주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를 보잘것없다며 투정을 부리는 어리석은 백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편이 되어 호소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저마다 제 천막 어귀에 앉아 우는 소리”를 내면서 하느님 속을 뒤집고 있는 그들 앞에 나서서 오히려 “저를 죽여주십시오”라며 목숨을 건 탄원을 올리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 독서 말씀과 복음에서 만나는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와 주님의 수제자 사도 요한의 모습에서 희망을 만나게 됩니다. 그날,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 가운데 두 명이 자신의 장막에 있다가 하느님의 영을 받아서 예언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라고 나섰던 속이 좁은 여호수아에게 베푸신 하느님 은총의 크기를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막아보려 했다며 으스대듯 보고했던 졸장부 사도 요한의 변화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바라건대 오늘, 2021년 연중 제26주일이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편이 되려는 조급함으로 상대를 판단하며 상처를 주는 일을 삼가기 바랍니다. 옹졸하고 성급하고 까칠하여 ‘끼리끼리’ 편을 먹고 담을 쌓는 어리석음이 사라지기 바랍니다. 하여 하느님께서 꼭 좀생이 같은 우리를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믿음인으로 변화시켜 주실 수 있도록 틈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졸렬하고 치사한 우리 모두를 사도 요한처럼 엄청난 사랑을 살아내도록 이끌어주실 수 있도록 영혼의 문을 열어드리면 좋겠습니다. 구실만 생기면 오만해지고 조그만 틈에도 사랑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여 깨어 지내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한없이 허술하고 허약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계십니다. 앓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려 당신의 희생을 봉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힘없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부탁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요청하십니다.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하십니다.

 

부디 그리스도인 안에서만은 땅의 뜻에 따라서 하늘을 움직이려는 억지가 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감히 미사를, 기도를 자신의 영달을 위한 방편으로 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참으로 소중한 이들을 보듬어 살펴 돕는 진정한 복음을 살아내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인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살맛이 나기를 소원합니다. 더 배려하고 넉넉히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우뚝하시길, 축복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