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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생활속의 복음]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라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1.

[생활속의 복음]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라

한국 순교자 대축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9.19 발행 [1630호]

 

 

 

 

5월부터 지금까지 계단 오르기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혀도, 장대비가 내려 나가기 귀찮아도 ‘날마다’ 하루 한 시간씩 꾸준히 계단을 오른 결과, 지난 몇 년간 늘 ‘다이어트’를 해왔음에도 꿈쩍 않던 체중이 빠지기 시작해 총 11㎏ 정도 살이 빠졌지요. 이 체험을 통해 어느 한 가지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겨우 체중 몇㎏ 줄어든 정도도 이렇게 큰 기쁨을 느끼는데, 만약 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하고 행복한 삶을 선물로 받게 된다면 얼마나 더 기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려면 어떤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먼저 ‘자신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구원에 별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들을 덜어내라는 뜻입니다. 좋아하고 원하는 것만 하려고 드는 나의 취향, 성격, 계획 등 자기중심적인 것들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예수님 중심의 삶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이는 절망이나 포기와는 다릅니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여름에 감나무가 덜 익은 열매들을 털어내듯이, 가을에 활엽수들이 그 많던 나뭇잎들을 떨구듯이….

 

중요한 것은 그 일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꾸준함을 ‘날마다’라는 말로 표현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청하듯이,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그 날 분량의 만나 만을 거두어들였듯이, 하루하루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는 과정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 삶은 십자가를 지는 행동으로 구체화 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에 동반되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로 가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비효율적, 비합리적인 생활양식이 아닙니다. 구원의 길을 걷다 보면 중간에 높은 산과 깊은 강을 만나는데, 그렇다고 ‘천국’을 내버려두고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냥 ‘정면돌파’를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이 ‘어쩔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진 채 힘겹게 끌고 가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지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원래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듯,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어 안고 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아프게 찌르고, 손해와 희생을 주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에 사랑과 순명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 성인들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신 분들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분들이 고난을 당하고 벌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고통이 그저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주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단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본받고 싶다면 우리도 구원에 대한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그 희망은 신앙인다운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처럼 하는 이들은 그 마음가짐을 굳건히 가지기 어렵겠지요.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그리스도인답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해야 마음속 희망이 굳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