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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 이야기] 거친 헤브론의 아브라함, 안락한 소돔의 롯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29.

[성경 이야기] 거친 헤브론의 아브라함, 안락한 소돔의 롯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아브라함의 첫 등장(창세기 12장)은 사실 조금 어리둥절합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은 나이가 75세였는데, 그의 이전 삶에 대하여는 그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의 영웅적 무용담이나 뛰어난 의로움, 혹은 탁월한 인품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왜 아브라함이 선택되었는지, 또는 왜 아브라함이어야만 했는지 짐작조차 어려울 뿐입니다. 성경은 그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난 이후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유추해 볼 때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닌 완전한 그분의 뜻이며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축복’이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소명 이야기에서 열두 번이나 반복되는 핵심단어는 ‘너’, 즉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에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친밀한 관계맺음’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더불어 하느님의 이야기도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하시는 약속은 일곱 가지나 됩니다.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내가 네 이름을 크게 만들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다.”,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지는 일곱 가지 축복은 먼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여 점점 모든 사람 그리고 땅 전체로 확대되어 갑니다. 선택된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부르심이 인류 전체를 위한 보편적인 구원과 축복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인품은 롯과의 분가 장면(창세기 13장)에서 도드라집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나 이방인의 땅에 정착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유목민이던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한 가지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문제는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나그네로 이방인의 땅에 몸 붙여 살다보니 그들에게 주어진 한정된 주거지 때문에 생겨난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큰 재산은 분명 축복이었지만 많은 가축 떼를 돌보기 위하여 필요했던 목초지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서로 좋은 목초지와 우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잦았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 ‘다툼’, ‘분쟁’은 히브리어로 ‘므리바’인데, 주먹다짐보다는 심한 언쟁, 투쟁, 폭언, 불평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당시로서는 거주지 선택이 가족의 장래와 전 재산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이 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정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로운 해결책으로 롯과의 분가를 결정합니다. 아브라함은 분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며 조카 롯에게 주거지 선택의 우선권을 넘겨주는 넓은 아량을 보입니다.

 

롯은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곳을 선택하여 떠나갑니다. 성경은 요르단 평지를 선택한 롯의 결정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13, 10) 하지만 이 표현은 에덴 동산의 이상적 환경 속에서 죄가 발생했고, 이집트 탈출 후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로 되돌아가려 했던 죄의 전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롯’이란 이름은 가리워졌다.’, ‘덮여졌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롯은 자신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눈과 마음이 욕심과 이기심에 덮이고 가려져서 소돔과 고모라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미래를 망쳐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그대로 남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이후 주로 머물던 곳으로 그가 하느님의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헤브론은 해발 927미터 높이의 척박한 산으로 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을 선택하고 그곳에 남았다는 것은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을 의지하는 헤브론의 아브라함과 소돔의 롯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삼촌 아브라함에게 불이익을 끼치면서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며 떠나간 롯과 아브라함의 모습을 한번 더 비교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고 있던 롯이 전쟁포로로 잡혀갔다는 말을 듣자 조카 롯을 향한 깊은 형제애를 드러냅니다. 그는 전쟁에 참여하여 대승을 거두고 롯과 그의 모든 재산을 되찾아옵니다.(창세기 14장)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너그러움을 보였던 아브라함이 이제는 친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운명을 걸었다고 하겠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떠나간 조카였지만 그를 위한 한결같은 충실함을 보이는 아브라함입니다.

 

눈에 좋아 보였던 소돔을 선택한 롯의 어리석음은 결국 자신을 큰 위험으로 내몰아 전쟁포로가 되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불행을 겪으면서도 롯은 안락한 그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곳에 적응하고 동화되며 소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아내를 잃을 때까지…

 

거친 헤브론과 안락한 소돔,

지금 당신이 머물러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월간빛, 202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