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샬롬의 비둘기 김명숙 소피아
제가 이스라엘에서 살 때 베란다로 비둘기 한 쌍이 날아든 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탐색하더니 이내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습니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비둘기가 내 집을 찾아 주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요. 혹자는 비둘기가 지저분해서 평화의 상징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평합니다만, 한 짝과 평생을 산다는 비둘기처럼 충실하고 절개 있는 동물이 어디 흔할까요? 아가(雅歌)에서는 연인을 이 지조 있는 새에 비유합니다. “나의 애인, 나의 비둘기, 나의 티없는 이여!”(5,2) 이런 천성 때문에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셨지요(마르 1,10). 그래서 우리도 성령으로 가득 찰 때 그 충실함과 순수함을 닮게 되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지만 성경에서는 비둘기가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에 물이 말랐다는 소식을 알려준 게 비둘기였지요. 처음에는 노아가 까마귀를 날려 보냈지만 쉴 곳을 못 찾아 돌아오고요(창세 8,7), 노아가 다시 날려 보낸 세 비둘기 가운데 두 번째가 올리브 잎을 물고 와 희소식을 전해줍니다(8,10-11). 옛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양을 사기 어려운 이들이 충실함의 상징인 비둘기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작은 집짐승 하나도 마련할 힘이 없으면, (···)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님에게 가져다가,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레위 5,7). 아이 낳은 여인도 비둘기를 봉헌하였는데요(레위 12,6-7), 성모님도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실 때 비둘기 두 마리를 봉헌하셨습니다(루카 2,22-24).
성경 속 비둘기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먼저, 순박함입니다. 때로는 순박하다 못해 우둔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지요. “에프라임(북왕국)은 비둘기처럼 어리석고 지각이 없다”(호세 7,11). 예수님도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비둘기의 순박함에 뱀의 슬기를 더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그런데 아가 2,14에서는 연인을 보고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하고 부릅니다. 연약해 보이는 비둘기에게 의외의 표현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친숙한 집 비둘기가 아닌 야생 비둘기는 바위틈이나 절벽에도 둥지를 틉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인가요? 절벽에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다니 말이죠. 부드러움 안에 자리한 강인함, 이것이 비둘기가 지닌 양면성입니다. 이로써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신 성령, 그분의 순수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강인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성지에서 발견하는 비둘기는 우리 안에도 그런 힘이 숨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때로 절벽 같은 삶에 부딪혀 온유함을 잃어버릴 때에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평화를 되새길 수 있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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