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3차 선교 여행의 중심 도시 에페소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 에페소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성당터.
소아시아(오늘의 터키) 지방 서쪽 끝에 에게해 연안의 에페소는 로마제국의 아시아 속주 수도로 바오로 사도가 활동할 당시 인구 20만이 넘는 국제적인 항구도시였습니다. 에게해를 거쳐 소아시아 중부 아나톨리아로 가는 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정치, 문호, 종교 등 여러 면으로 소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도시였습니다.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기리는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특히 유명했습니다. 에페소를 비롯한 아시아 각처의 수많은 사람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면서 이 신전을 찾았고 이 신전을 이용해서 돈벌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설교와 놀라운 기적으로 복음을 전하다
이 화려한 국제도시에서 바오로는 오랫동안 머물며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에페소 행적을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설교와 토론을 통한 복음 선포입니다(사도 19,8-10). 이 활동은 첫 3개월은 유다인 회당에서, 그 이후에는 티란노스 학원에서 이뤄집니다. 바오로가 유다인 회당에서 티란노스 학원으로 설교와 토론의 무대를 옮긴 것은 고집스럽게 믿지 않으려 하면서 공공연하게 헐뜯는 일부 유다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제자들을 데리고 티란노스 학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전하고 토론합니다. 이 일이 두 해 동안 계속되면서 아시아의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 위에서 내려다본 고대 에페소
사도행전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바오로의 열성적인 말씀 선포 활동에 힘입어 히에라폴리스, 라오디케이아, 콜로새 등지에도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물론 이 도시들에 바오로가 직접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이 도시들에 교회가 형성된 것은 콜로새 출신으로 바오로의 제자이자 협력자인 에파프라스의 활동 덕분이지요(콜로 1,7; 4,13 참조).
두 번째는 기적 행위를 통한 복음 선포입니다(사도 19,11-12). 하느님께서 바오로를 통해 비범한 기적들을 일으키시어 바오로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바오로가 작업할 때 둘렀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이 물러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초기에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만 드리워져도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이 치유된 것(사도 5,15-16)과 비슷한 일이 바오로를 통해서도 일어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사도 19,13-16).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하려다가 악령 들린 사람이 오히려 그들에게 달려들어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큰 낭패를 본 것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에페소에 사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가 겁에 질려서 자기들이 해온 그릇된 행실을 낱낱이 고백했습니다. 마술을 부리던 많은 이들도 마술과 관련된 자기 책들을 모아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 책들을 값으로 환산하면 5만 냥 곧 노동자 5만 명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마술이 성행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은 더욱 힘차게 자라 힘을 떨쳤고,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바오로는 자신이 2차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곧 필리피와 코린토를 방문한 후 예루살렘에 갔다가 다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협력자들인 티모테오와 에라스토스 두 사람을 먼저 마케도니아로 보내는 조치를 합니다(사도 19,20-22).
큰 소동이 벌어지다
이럴 즈음 바오로를 반대하는 소동이 벌어집니다(사도 19,23-40). 주님의 말씀이 힘차게 자라며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용해 돈벌이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자 그들 중 한 사람인 은장이 데메트리오스가 사람들을 부추긴 것입니다. 그는 같은 생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바오로 때문에 사업을 망치게 됐고 아르테미스 여신의 위엄이 상실될 위험에 처했다며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이 말에 사람들이 격분해서 들고 일어나 바오로의 동행인 가이오스와 아리스타르코스를 붙잡아 노천극장으로 몰려가는 등 온 도시가 극도로 혼란에 빠집니다. 에페소의 고위관리인 서기관이 나서서 겨우 사태를 진정시키고 사람들을 해산시킵니다.
이 소동이 가라앉은 뒤에 바오로는 제자들을 불러 격려한 후 작별 인사를 하고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길을 떠났다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사도 20,1). 하지만 이 소동으로 바오로는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초를 겪었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합니다. 이는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나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1코린 15,31-32; 2코린 1,8-10; 필리 1,13; 필레 3절 참고).
요컨대 바오로는 적어도 두 해 동안은 열성적인 말씀 선포와 놀라운 기적 행위들을 통해서 선교에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렇지만 반대하는 이들과 시기하는 이들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지면서 바오로는 죽을 고비를 겪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는 고초 끝에 겨우 에페소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 에페소에서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비롯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등을 씁니다. 이런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바오로는 에페소를 단지 선교지로만 여긴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선교 본부로 삼아 활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3년이라는 긴 기간을 에페소에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사도 20,31 참조).
- 에페소 아르테미스 신전 기둥 유적(좌) 켈수스도서관과 오른쪽의 마재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 개최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 활동 중심지였고 신약성경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의 당사자이자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인 에페소는 이후 교회 역사에서도 중요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가 431년 에페소의 천주의 성모 대성당에서 개최된 것입니다.
7세기 이후 무슬림의 공격을 받으면서 조금씩 옛 명성을 잃어 간 에페소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후 완전히 쇠락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는 유적만 남은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도시 곁을 흐르는 강에서 나온 퇴적토가 쌓이면서 옛 항구도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에페소 유적지는 해안에서 5㎞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몇 배나 컸다고 하는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도 큰 기둥 하나와 잔돌들 일부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관광지 에페소를 대표하는 유명한 켈수스 도서관은 바오로 사도 이후인 2세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민 광장, 시장터, 노천 대극장, 켈수스 도서관 옆의 마재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을 비롯한 에페소의 다양한 유적들은 화려했던 고대 에페소의 문화와 함께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더듬어보기에 충분합니다. 2만 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야외 대극장에서 고대 항구로 이어지는 아카디아 길 한쪽에는 에페소 공의회가 열렸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 유적도 볼 수 있어 에페소를 찾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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