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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4) 안티오키아 사건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4) 안티오키아 사건(2,11-14)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학다리 본당)

 

 

첫 번째 논증(1,11-2,21)의 세 번째 단락(2,11-14)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오로는 이 단락에서 케파(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을 지적하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케파가 안티오키아에서 보인 첫 모습은 예루살렘에서 합의하여 결정된 내용(2,6-9)과 부합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유다인들은 이민족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민족의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거나 탈출(34,15; 1코린 10,28-31 참조) 혹은 불결한 짐승의 고기여서(신명 14,3-21)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에제 4,13; 호세 9,3-4 참조). 그럼에도 유다인 출신인 케파는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하여 이민족들과 함께 거리낌 없이 식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음식과 정결법에 관한 율법 규정이 더 이상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을, 더 나아가 유다인과 비유다인(이민족)의 구분이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발생했습니다. 케파가 이민족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유다인과 비유다인을 구분 짓기 시작했습니다. 바오로는 케파의 이러한 행동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 (이방인과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과 식사하며) 이민족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민족과 거리를 둠으로써 어떻게 이민족들에게 (유다인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서는) 유다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2,14)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다인과 비유다인의 구분은 없다고 확언합니다(3,28). 그럼에도 바오로가 유다인과 비유다인을 구분하며 케파를 반박하는 것은 그렇게 구분 짓는 케파의 관점에서 그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다인과 비유다인 구분없이 행동하다가 다시 그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케파의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낼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 단락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케파와 바오로의 차이점입니다. 케파가 “할례 받은 자들에 대한 두려움”(2,12)으로 인해 위선적인 행동을 할 때, 바오로는 “복음의 진리”(2,14)를 수호하고자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케파까지 질책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케파의 위선적인 모습이 인간에게 기원한다면, 바오로의 충실함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그에게 계시한 복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