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광야의 오아시스 엔 게디 김명숙 소피아 박사
이스라엘 땅의 절반은 광야입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어린왕자』)이라는 말이 있지요. 광야는, 사막만큼은 아니지만 참 황량합니다. 그래도 그 안에 생명이 깃드는 건 오아시스 덕분이지요. 고대에는 쫓기고 핍박당하는 자들이 광야로 찾아 들곤 하였습니다(1사무 26,1-3; 시편 55,7-9).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났고요.
유다 광야의 오아시스 중 대표적인 곳이 ‘엔 게디’입니다. ‘엔’은 샘, ‘게디’는 들염소, 특히 새끼 염소를 의미하니 엔 게디는 ‘들염소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곳 오아시스의 물은 특이하게도 몇 미터 높이의 폭포로 쏟아집니다. 덕분에 광야에서 희귀한 동·식물을 볼 수 있는데요, 지명 뜻과 어울리게 들염소가 가장 흔합니다.
이 폭포의 이름은 솔로몬(아가 3,7; 8,11)의 연인인 “술람밋”(7,1)입니다. 엔 게디가 ‘솔로몬의 노래’인 아가雅歌의 배경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술람밋(슐라밋)은 솔로몬(쉴로모)의 여성형이니 ‘솔로몬에게 속한 여인’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1,14에서 여인은 자기 연인을 “엔 게디 포도밭의 헤나 꽃송이”에 비유하는데요, “엔 게디 포도밭”이 자신에 대한 은유이니 여인은 스스로를 농장에 견준 셈입니다. 자식을 낳는 여인과 열매를 생산하는 농장의 공통점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지요. 하얀 꽃이 피는 헤나는, 향이 좋아 유목하는 여인들이 가축 냄새를 없애려고 자주 꽂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가의 여인은 자기 연인을 포도밭(=여인)에 안긴 헤나 꽃송이에 비긴 셈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은 곳 가운데 하나도 엔 게디입니다(1사무 24,1-2). 다윗이 엔 게디의 동굴 안에 있을 때 사울이 들어와 볼일을 보자(4절),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몰래 자른 뒤 주군이신 임금님을 죽일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주님에게서 기름으로 성별 된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7절). 당시 이스라엘에는 기름부음받은이를 죽이면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쓰러졌을 때도 다윗은 같은 이유를 들어 사울을 죽였다고 보고한 이를 처단합니다(2사무 1,12-16). 사실 사울은 필리스티아에 목숨을 잃는 치욕을 피하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1사무 31,4-5), 그 보고자는 다윗의 신임을 얻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의 부탁을 받아 자기가 죽였다고 거짓 보고를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숙적인 ‘아말렉 사람’이라 사울이 그에게 죽여 달라고 청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아무튼 다윗은 기름부음받은이를 죽였다고 스스로 주장한 그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광야의 생명수를 쏟아내는 엔 게디에서는 아가의 연인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다윗 그리고 사울의 비극적인 사연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의정부주보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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