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두 번째 질문, ‘부자는 무슨 잘못 때문에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 걸까요?’
루카 16,19-31을 보면, 그 어디에도 부자가 왜 고통을 받는지, 그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동시에 라자로가 아브라함 품에 쉬게 된 이유, 그의 선행도 언급된 내용이 없습니다. 단지 라자로가 [프토코스]였다는 것으로 마태 5,3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연결하여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단순히 부유했기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부와 가난이 윤리적 선악의 판단 기준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양상은 우선 부가 하느님의 복이고 가난은 하느님의 벌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크게 다릅니다.
24절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이는 부자가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 대문간에 누워 구걸하던 거지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부자는 그가 살아온 모습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선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서 종교적 행위이며 의무였습니다(레위 23,22; 신명 14,28-29; 24,20-21). 이는 ‘하느님께 행하는 일’(잠언 19,17)이며, 하느님의 보답(에제 18,7; 잠언 21,13; 28,27)과 죄의 용서(다니 4,24; 시라 3,30)를 받을 자격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자선은 자기 재물을 포기하면서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었습니다(시라 35,4; 토빗 12,9).
부자는 이러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부를 축적하기만 하고, 나눌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그의 집 문 앞에 쓰러져 있던 가난한 라자로의 비참한 삶이 증명해줍니다.
루카 12,20-2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재화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어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궁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부여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재화를 사용하고 낭비함으로써 하느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부자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재산은 소유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것임을 성경은 알려줍니다(말라 3,8-9; 시라 4,1-2.4).
[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1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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