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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사순 제5주일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3.

[말씀묵상] 사순 제5주일 -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제1독서 이사 43,16-21 / 제2독서 필리 3,8-14

복음 요한 8,1-11

가톨릭신문 2022-04-03 [제3288호, 19면]

 

 

당신의 영을 채워 축복해주기 위해

모든 인간의 회개를 바라시는 주님

세상 고통 이겨내고 정직한 삶 살며

하느님 나라 입성하는 영광 누리길

 

 

지난 3월 8일 저희 신학원에서는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입학미사를 준비하면서 많이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 차 버린 세상에서 오직 주님을 향해서 도약하는 결단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축복의 언어로, 제일 귀하고 고귀한 말씀으로 축하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분들 안에 자리한 ‘모자람’을 칭찬해 드렸을 뿐입니다. 부디 “하느님의 어리석음”(1코린 1,25)을 더욱 닮아 살아가시길, 기도드릴 뿐이었습니다. 이야말로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더 깊은 진리에 다가가려는 다짐이기에 그랬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겸손히 인정하는 귀한 고백이기에 그랬습니다.

 

사순 제5주일입니다. 이제 열다섯 밤만 자고 나면 온 세상에 주님 부활의 축포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변함없으신 주님의 은혜가 온 땅에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희망을 기대하며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이 복음 말씀을 읽으며 스러지는 기분입니다. 그날 예수님을 찾았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거스른 행동에 재를 뒤집어쓴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들의 유치한 행동이 너무 치사해서 마음이 언짢은 겁니다.

 

소위 하느님을 경외하고 섬긴다는 종교인들이 어찌 이렇게나 졸렬할 수 있는지, 어이없는 겁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당시에 바리사이들과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잡아들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여의치 않았다는 복음의 전언인데요. 그도 잠깐, 이내 거푸거푸 자행된 ‘예수님 죽이기’의 모략이 끊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속이 타들어 가는 우리네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한 사도는 더 교활해지고 훨씬 교묘해진 그들의 계획이 어둠 속에서 활개를 치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새삼 그날 그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묵묵하기만 했던 군중들이 야속해지는데요. 그들 중에는 분명히 그날 이른 아침, 성전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도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아, 이쯤에서 힘없는 사제는 마음이 허탈해집니다. 매일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쏟아서 강론을 준비하고 들려주지만, 빨리도 잊어버리고 팽개쳐지는 현실이 와락 서럽습니다. 잠깐, 사제에게 한없이 요구되는 이해와 사랑과 관용의 무게도 버겁게 다가옵니다. 세상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다만 ‘덩달아’ 함께하지 않으면 무리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라는 심약함으로 인해서 한통속으로 뭉쳐, 서슴없이 손에 돌멩이를 움켜쥐는 군중이 산재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날 주님께서도 그들의 비열함에 마음이 아프고 민망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사탄의 꼬드김에 홀려서 악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눈에는 팽그르르 눈물이 돌았을 것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눈물을 감추시려고 시선을 내려서 땅에 무언가를 끄적이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니콜라 푸생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오늘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인간이 죄인이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죄인과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죄인으로 구별된다는 진리를 밝히십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자신의 죄를 숨기기에 급급하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자신의 죄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이 지은 죄에서 돌아서기를 촉구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사로써 영혼이 말끔해지기를 고대하시며 당신께서 손수 우리 영혼을 정갈하게 꾸며줄 수 있기를 소원하십니다. 온 세상이 참회하여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이 주간 동안만이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버거운 일들로 혼돈에 휩싸인 세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온 산야에 여리디여린 새싹을 틔우시며 부활을 일깨우시는 그분께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야말로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2)는 약속에 충실하신 주님 손길임에 감사드리기 바랍니다. 나아가 어느 누가 아닌, 바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 주님의 성심에 집중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나 때문에’ 아프고 쓰라린 그분의 마음을 느끼기 바라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큰 죄도 서둘러 단죄하지 않으시고 우리 안의 양심이 되살아나길 기다리시는 그분 앞에서 솔직해지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명을 창조하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 안에 당신의 영을 채워 축복하고 계십니다. 추한 죄로 더럽혀지고 고통으로 상처 입은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새 힘을 넣어주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꾸미고 확장시키십니다.

 

때문에 그날 당신 아들이 세상에서 당한 갖은 고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닌 아픔, 우리가 겪는 고통, 우리에게 각인된 죄악의 너절함마저도 그분께는 천국을 위한 소재임을 알려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제아무리 죄로 인해서 난도질을 당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얼마든지 그분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다는 몹시 중요하고 대단히 소중한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사순 시기의 막바지, 이제 보름만 지나면 나를 위해서 ‘다시’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십니다.

우리의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그 무엇도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 정직함으로 그분께로 다가가는 은혜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진정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천국의 가족으로 승격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부산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임하면서 교무처장 및 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