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시인 / 서정시 같았다
쇠 치는 대장간이 남아 있었다 튀밥 솥 엉덩이 아래가 금방이라도 열릴 듯했다 국밥집 앞에는 그런대로 줄어져 가던 사람 띠가 늘어서 있었다 대장간 안이 외따로웠다 호밋자루를 고르는 노파의 손길이 재작년보다 주저거렸다 밥값도 못 건진 풍구불이 꺼져가는 소리를 내었다 대장간이 남아 있었던 근처에 거기 붙어 있던 대장장이의 팔뚝이 자랑스러웠다 국밥집 돼지 창자 냄새가 그리 떳떳하지는 않았다 국밥만 하고 간다는 발걸음 하나가 갈지자를 그었다 막걸리도 몇 사발 껴들었던 것 같았다 튀밥 솥 밑에서 봄꽃이 피든 소리는 변함없었다 자랑스럽거나 부끄러웠다는 말들이 그저 한몸 같았다 화순이나 담양 장날 해름참 같았다
정윤천 시인 / 초년
망초밭이 따라왔다 부추밭이 더 열심히 따라왔다 만물상회 차부 앞의 흰 봉지를 갔었다 심부름을 밀가루 봉지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찾아 나서야 할 국수틀을 돌리던 하염없는 일과 상여 꽃을 접어 파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일을 치르던 친구네 사이에 끼어 있는 먼지 푸석한 점집의 문턱 한 줌이 담겨 있었다 무섭고도 아름답기로는 점집 안도 환했던 것 같았다 궁금한 데가 많았던 하얀 분粉 같은 하루는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밀가루 봉지를 싸맨 신문지에 와 걸렸던 갈래 어디로 바람아 너도 차부 앞의 큰길에서 돌아오던 그때 군데군데에서 더듬거렸던 것 같았다.
정윤천 시인 / 발해로 가는 저녁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도 하였다
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은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상 위의 김치죽 같은 새벽빛이 차창에 어렸다가 빠르게 엎질러지고는 하였다 변방의 마을들이 숨을 죽여 잠들어 있었다
병동의 복도는 사라진 나라의 옛 해안처럼 길었고 발해는 거기 눈을 감고 있었다 발목이 물새처럼 가늘어 보여서 마침내 발해였을 것 같았다 사직을 닫은 해동성국 한 구가 미처 닿지 않는 황자나 공주들보다 먼저 영구차에 오르자 가는 발목을 빼낸 자리는 발해의 바다 물결이 와서 메우고 갔다 발해처럼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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