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시인(안동) / 허공 수묵화
황토벽에 실금이 갔다 표시를 해 두었더니 자라나고 있었다 한파에 공중을 떠돌던 씨앗 하나 틈새에 들어와 발아하고 있었다 살얼음이 얇게 덮여 있었다
툭툭 꺽인 곳마다 맺힌 것이 보였다. 먹 점은 한 곳에서 머물다 꺽여 길게 뻗어 올랐다 맺힌 가지 끝에서 곰팡이달이 떠올랐다 살얼음꽃도 피어났다 비로소 수묵화가 걸린 방이 환해졌다.
산호(珊瑚)가지마다 밝은 달이 걸리고
나는 여백이 되고 싶었다.
이명 시인(안동) / 콩 타작
1
소백산 기슭 고지리마을 농부들이 도리깨를 휘두르며 콩 타작을 한다.
대나무 도리깨장부 꼭지 끝을 후벼 파는 휘추리 마찰소리 물푸레나무 도리깨아들의 허공 가르는 소리 공중을 한 바퀴 휘감아 돌며 콩대 부서지는 소리 껍질 터지는 소리 박 소고 편경 편종이 가끔 세피리 소리 인 듯
생으로 어우러져 내는 난타에 콩깍지가 사정없이 튀어 오른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맑고 투명한 낟알이 춤을 춘다. 반짝이는 생 콩알이 상원사 사리 같다.
2
멍석위에 정신을 널어두고 타작을 한다. 내 껍질만 펄썩이고 낟알은 없다. 쭉정이만 튈뿐
두들길수록 멍만 시퍼렇게 든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 시인 / 정겨운 우울들 외 1편 (0) | 2022.10.11 |
---|---|
최규리 시인 / 매달린 사람 (0) | 2022.10.11 |
엄세원 시인 / 해금 (0) | 2022.10.11 |
정윤천 시인 / 서정시 같았다 외 2편 (0) | 2022.10.11 |
구순희 시인 / 밥이 질다 외 1편 (0) | 2022.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