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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명 시인(안동) / 허공 수묵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1.

이명 시인(안동) / 허공 수묵화

 

 

황토벽에 실금이 갔다

표시를 해 두었더니 자라나고 있었다

한파에 공중을 떠돌던

씨앗 하나

틈새에 들어와 발아하고 있었다

살얼음이 얇게 덮여 있었다

 

툭툭 꺽인 곳마다 맺힌 것이 보였다.

먹 점은 한 곳에서 머물다 꺽여

길게 뻗어 올랐다

맺힌 가지 끝에서 곰팡이달이 떠올랐다

살얼음꽃도 피어났다

비로소 수묵화가 걸린 방이 환해졌다.

 

산호(珊瑚)가지마다

밝은 달이 걸리고

 

나는 여백이 되고 싶었다.

 

 


 

 

이명 시인(안동) / 콩 타작

 

 

1

 

소백산 기슭 고지리마을

농부들이

도리깨를 휘두르며 콩 타작을 한다.

 

대나무 도리깨장부 꼭지 끝을 후벼 파는

휘추리 마찰소리

물푸레나무 도리깨아들의

허공 가르는 소리

공중을 한 바퀴 휘감아 돌며 콩대 부서지는 소리

껍질 터지는 소리

박 소고 편경 편종이 가끔

세피리 소리 인 듯

 

생으로 어우러져 내는 난타에

콩깍지가 사정없이 튀어 오른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맑고 투명한 낟알이 춤을 춘다.

반짝이는 생 콩알이

상원사 사리 같다.

 

2

 

멍석위에 정신을 널어두고

타작을 한다.

내 껍질만 펄썩이고 낟알은 없다.

쭉정이만 튈뿐

 

두들길수록 멍만 시퍼렇게 든다.

 

 


 

이명(李溟) 시인(안동)

1952년 경북 안동 출생. 2010년 <문학과 창작> 신인상을 수상을 통해 등단.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 학당』 『벌레문법』 『벽암과 놀다』 『텃골에 와서』 『초병에게』. 시선집 『박호순 미장원』 등. 2013년 목포문학상을 수상. 전 한국거래소 최고정보책임자(C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