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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규리 시인 / 매달린 사람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1.

최규리 시인 / 매달린 사람

 

 

트럭이 달린다 시체들을 싣고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시체들은 풍선처럼 떠 올랐다 공중에서 우산처럼 팽창한다 보관할 곳 없는 이야기가 달린다 달리는 수밖에 없다 멈추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라서 시체는 트럭을 달리게 할 뿐이다

 

육체와 바퀴의 아첼레란도

육체를 둘러싼 공기가 칸타타 콘트라베이스로 감싸 안으며 데이브 홀랜드는 일렉트릭 베이스를 연주하고 기타에 매달리고 팽팽했던 이들의 시간과

멈추지 않는 바퀴

 

흰 자락이 펄럭인다 사물의 정체는 차원의 세계로 향하고 만져질 수 없는 당신을 찾아간다

걸을 수 없는 사람

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흰 장미가 되고 차원이 된다

트럭 아래에서 트럭과 함께 달리는 흰 개를 본다 보는 사람에 따라 주인과 산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개는 뛰는 것일까 끌려가는 것일까 트럭은 개가 공중에서 하얀 가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모른다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를

 

형체도 없이 증거도 없이 공기 방울처럼

 

물체들이 떠다닌다 바다 위에서 물새보다 위에서 바다는 멈추고 장미는 장미의 찰나를 기다린다

 

돌아가자 붉은 장미를 지나 흰 장미를 붙잡고 빛을 따라 같은 하늘을 반복하는 헬리콥터야 제발, 기계는 장악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것을 보려고 높이 오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차원을 넘어선다 몇 차원의 세계를 지나야 할까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무서웠다

 

헬리콥터에 매달려 가는 사람을 보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독수리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하늘을 나는 사람이라고 동경할 수 있다

인질과 구출이란 비슷한 장면의 엇갈림

수증기로 확산한다면 휙휙 지나가는 거대 바람으로 풍경을 합성하고 착각을 불러올 것이다 공포의 시간이 둥둥 시체처럼 떠오르는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멋지다고 박수를 칠지 모른다 보는 사람들은 낭만을 기대하고

흰 장미에 물을 준다

 

온도에 따라 차원을 넘어서는 물, 물체들

 

냉각과 따뜻함의 유지가 허물어질 때

고체와 기체의 다른 입장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코드에서 둥그렇게 구멍 난 곳에서

 

공중은 물을 만들어 흰 장미를 키운다 다시, 새를 불러오는 마음으로

 

공격하는 자와 끌려가는 자의 차원이 다른 세상에서

꽃잎이 날린다

우산처럼 펼쳐진 공포의 건축물이 떠다닌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5월호 발표​

 

 


 

최규리 시인

서울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질문은 나를 위반한다』(시와세계, 2017)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이며 동서문학회 회원, 시와세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