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시인 / 춘일(春日)
아침 상머리 아버지는 강아지처럼 우시었다 일 년 반 넘어 병이 도져 아무 일도 못하신 아버지 또 농사철 되어 일 잡아 나감에 가슴이 섬뜩하여 밥숟갈 뜨다 말고 강아지처럼 우시었다
산전이든 원태비밭이든 둘 중 하나를 버리자는 내 말에 어머닌 눈만 슴벅슴벅 아무 말도 안하셨다 그렇게 아침이 가고 날은 청명, 삼월 햇살 속으로 쌀랑쌀랑 찬바람 부는데 소를 빌려 쟁기를 빌려 우린 밭 갈러 나섰다
땅심 풀리고 버들개지 잎 트며 수런거리고 마을로부터 들려오는 먼 개 짖는 소리 소는 끄을고 사람은 몰고 볏짚 두엄이 새 흙에 갈려 뒤잦혀지고 엎어진다
히랴 쩌, 이 늠의 소...... 온 김에 원태비밭도 갈고 산전도 갈자는 아버지의 말씀에 내가 다시 맞선다 ...... 사람이 있고 나서 일이 있는 게지, 손포 뻔한데 어찌 감당하신다고 ...... 그래도 갈아만 놓으면 뭐라도 심게 되여, 고추도 심고 마늘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밭은 한가로운데 나는 내 말의 모지러움에 속이 상하고 아버지는 뒷짐지고 시름겨웁고
조재도 시인 / 청시(靑枾)
마음밭 대가리에 시란 놈이 올복돌복 내어민다 나는 안돼 안돼 하며 그놈의 대가리를 무지근히 억누른다 그렇게 잊고 며칠이 지났는데 다시 또 마음밭 귀퉁이에 시란 놈이 대가리를 옴쏙옴쏙 쳐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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