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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윤서 시인 / 오후5시 옥상의 프랑켄슈타인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24.

정윤서 시인 / 오후5시 옥상의 프랑켄슈타인

 

 

세브란스 옥상에서 바퀴를 굴리는 그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변해갔다

옥상 난간에서 땅바닥을 주시하는 그의 휠체어

광화문 사옥 인근 술집에서 동료들과 상자째 맥주를 마셔도 끄덕없던 그였다

 

감염경로 불명의 에크모 치료를 마친 그

폐는 반 석회화 지능은 반 지진아

일년째 입퇴원을 반복 중이다

깃털을 달아줘 장식이라도 좋아

코로나 후유증을 날리게

날릴 수가 없다면 차라리 휘뚜루 마뚜루

저 땅 밑으로 꺼질께

 

역병의 제왕 코로나

왕관을 아로새긴 맥주의 제왕

왕관의 돌기로 무작정 찌르고 뚫는 바이러스 찔린 심장은 마구 부풀어 오르지

비틀거린다는 것은 똑바로 걷는다는 증거일까

커다란 깃털을 훔쳐서라도 날고 싶어

 

휘뚜루 마뚜루

위드역을 폭파한 프랑켄슈타인

더 뾰족하고 기괴한 새 왕관

빽빽해진 몸값을 배로 올린 술병들

밀착되지 않은 마스크와 밀착된 입술들

붉게 뭉개지는 눈빛들

잘린 피가 스민 스테이크 조각

가까이 갈께 심장이 터지면 어쩌지?

불룩한 와인잔을 들고서 펭귄처럼 뒤뚱뒤뚱

휘뚜루 마뚜루 오늘밤 같이 있자

 

디리리링 접종 유효기간 하루 남았습니다

변이역 너머 변이역

마스크를 찢고 가면을 찢고 통제를 찢고

침 튀기는 공방전 침 튀기는 불의 눈을 켜

방울방울 타오르는 침방울들

모듬전 한접시 더주세요

커피로 이륙하던 아침과 알콜로 착륙하던 저녁마다

악마의 얼굴이 사람을 닮았다는 고전의 옆구리를 후려쳤지

조기출근 늑장퇴근을 일삼던 종자들을

이동금지와 정지화면 속에 봉쇄하고 휘뚜루마뚜루

 

알파 오미크론 프랑켄슈타인으로 변모한 변이역

브레인 포그가 들어찬 머리를 마구 흔들어 농도별 맥주를 순식간에 훑고

밀실과 야합속에 취하고 싶어 한강이 토사물로 넘치도록

빽빽한 곳일수록 창문은 꼬옥 닫아 콩나물 시루를 덮은 짙은 보자기처럼

파래지는것 보다 노래지는게 좋아

휘뚜루마뚜루 에어컨과 히터를 동시에 틀어

 

헬륨가스통을 열고 봉지 양끝을 잡아 당기면

흐릿흐릿 편안해질테지

갯벌에서 폴짝폴짝 뛰는 장둥어가 될지도 모르지만

모가지를 꺾어버린 하얀 봉지가 될지도 모르지만

 

세브란스 옥상에 대기중인 에어 엠블런스

관제탑, 깃털 달린 휠체어는 없습니다

기내 배변 서비스는 특화되었습니다

자살 봉지 양끝을 당기시면 편안해지실 겁니다

병나발을 불던 휠체어는

깜깜한 착륙과 캄캄한 이륙 사이에서 휘뚜루마뚜루

 

웹진 『시인광장』 2022년 6월호 발표​

 

 


 

 

정윤서 시인 / 더블 침대

 

 

털썩 앉은 두 사람의 엉덩이쯤이야

냅다 누운 두 사람의 어깨쯤이야

두 사람쯤이야 숨소리쯤이야

웅크린 쇠줄로 부드럽게 단단히 받을수 있지

나선형 쇠줄로 웅크린 나는 탄력적이니까

 

주저앉은 한 사람 엉덩이쯤이야

힘없이 쓰러진 한 사람 어깨쯤이야

홀로 누운 여자쯤이야 머리맡 작은 물병쯤이야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는 여자, 화장실만 겨우 다니는 여자

맥 없는 여자는 사실, 사실은 위험했는데

 

원효로 언덕바지 참기름집 막내 아들

지방 공기업 인턴이었던 여자

선을 본지 백일만에 식을 올린 그들은

사실, 사실은 위험했는데

 

화장대 거울에 비친 로션과 립스틱

둥굴게 말아놓은 넥타이

모서리에 걸터 앉은 남자는 버릇처럼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는다

늦은 햇살 늦은 후회 꼬인 혓바닥

탄성과 복원을 망각할 지경이지

모두 다 망각할 지경이지

 

신행 직후 안방에서 뛰쳐 나간 남자와

밤낮 내게 몸을 맡기다 떠난 여자는

첫날부터 기묘한 정적 뿐이었다

여자가 누웠던 자리를 퀭하니 보는 남자의

시선이

어둠이 깊도록 자세를 바꿀 줄 모른다

 

더블은 커녕 싱글도 움키지 못한 나는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신세

어쩌다

힘 없는 남자의 엉덩이만 느끼는 나는

여전히 부드럽고 탄력적인데 단단한데

 

계간 『국제문단』 2022년 봄호 발표

 

 


 

 

정윤서 시인 / 스텔스

 

 

가오리 한 쌍이 공중을 지난다

항행하는 옆구리에는 폭탄이 장전돼 있다

피를 봐야만 잠잠해지는 육식성

부표가 떠 있는 저녁 바다 위를 날아간다

그림자에 놀란 기러기 떼가 고도를 낮춘다

물 바닥에 붙어 사는 가오리가 자꾸만

수면 위로 뛰어 오른다

 

욕망의 바닥에는 은밀함이 살고 있다

검은 커튼 사이로 새는 환한 빛

연초록 양귀비가 꽃을 피웠다

잠복한 수사대

 

수평선을 지나온 검은 세단이 모텔로 간다

누워버린 취객을 밟으며 동굴게 몸을 마는 타이어

제 살 내음을 지워버린 아스팔트

출력되지 않는 영상들 탐지되지 않는 레이다

 

캘리포니아는 언제 갈 건데

뉴욕은 언제 갈 건데

전조등을 끄고 달려온 너는 나의 스텔스

두번째 애인

브루클린은 언제 갈 건데

뉴욕은 언제 갈 건데

모텔 말고 호텔 개새끼야

잿빛 구름에 가려진 너는 읽을 수 없는 스텔스

 

고도를 높인 두대의 전투기가 금기의 문을 열었다

혜성이 지나가버린 하늘가에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른다

정찰 전투 폭격

지평선이 사라지고 있다

읽혀지지 않는 항로에 날 수 없는 가오리

해석되지 않는 육식성

스텔스 이제는 없다

폭파된 잔해가 꿈인듯 식탁에 놓여져 있을 뿐

 

​​-2021년 제23회 전국계간문예지 선정시

 

 


 

 

정윤서 시인 / 무선 헤드셋을 쓰고 유니콘을 만나다

 

 

가슴속 소음을 던져버리기 위해

꿈의 숲속으로 가는 플랫폼에서 기차를 탔어

마성의 사내가 올지도 모르는 밤이니까

 

도시의 불협화음이 아득히 연주될 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유혹의 미끼

흰 셔츠와 청바지로 도시를 질러온 거니

목덜미에서 풍기는 스킨 향이 아찔해

그 셔츠에 립스틱을 묻히고 싶어

어디서 왔는지 묻지도 않을락

 

한쪽에서 꺾인 바람이 푸륻 뿔을 밀어 올리고 있었어

순결한 처녀의 무릎에서만 잠이 든다는 유니콘

가식의 처녀는 뿔로 뚫어버리고 만다지

객실이 소등되자 그는 내 어깨에 잠들고

그를 재운 나는 순결의 처녀

 

흔들리는 잠 속에서 열차는 리듬을 탔어

숲 그림으로 가득 찬 마법은 영험을 잃어버렸나봐

그는 깨어났지만 나는 눈을 뜰 수 없었어

지금 나늗 유니콘과 함께 숲속을 달리는 중이야

아무도 이제 나의 헤드셋을 벗길 수는 없어

 

 


 

 

정윤서 시인 / 천일의 밤

 

 

알리바바, 주문을 외워봤자 보물은 간데없고

동굴안은 벽마다 낙서만 가득해

대자보에 열중하던 피 끓는 청년들도

쪽잠을 찢어 팔던 신문팔이도 간데없는 그곳에선

도둑들만 남아서 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어

천년이 지나도 문을 열지 못하는 구급차는

바리케이드 앞에 얼간이 모습으로 서 있을테지

알리바바,

밤이 되기 전 손질 받은 머리와 잘 다듬어진 손톱에

야릇한 향수를 뿌려다오

동굴 속 도둑은 코를 벌렁거리다가 짓다 만 아지트에

너를 끌고 간 후 기필코 네 속눈썹을 탐하리라

그러다가 다시 절정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어지럼증을 앓으면서도 뱀의 몸짓으로 감아올릴지도 몰라

알리바바,

아직도 반지하 강당이나 대형교회당에서

십계명 장엄한 소리가 들리잖니

가장 소중한 보물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비밀주문

도둑이 허풍을 그치고 그곳에서 뛰쳐나오거나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세상 밖으로 질주할 수 있도록

동굴 앞 바리케이드를 걷어주지 않을래?

 

알리바바, 주문을 외워봐

 

 


 

 

정윤서 시인 / 굴뚝 나무

 

 

일생을 한댓잠으로 지나온 나무는

뜨거운 내면을 지녔다

 

굴절을 모르고 직선으로만 버티는 나무

몸통은 흔들리는 법을 모른다

 

방치된 우울과 불안만이

어둡고 뜨거운 연도를 흐른다

 

높다란 공중에 당도하지 못한 숨결

 

흔들리는 것은

어떤 슬픔을 참는 것

 

오직 고요를 터득한 바람과

떠도는 구름을 거역하지 못할 뿐

 

나무를 꿈꾸는 나무는

공중을 뒤덮는 밤의 얼굴을 헤집으며

까무룩 숨을 게워낸다

 

새들이 달아나고

굴뚝위로 먹구름이 몰려온다

 

-2020년 계간《미네르바》겨울호 등단시

 

 


 

정윤서 시인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수료. 2020년 《미네르바》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