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 시인 / 암스테르Dam
지구의 모든 땅들이, 아직, 물 위에 떠 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 거리마다 해시시 연기가 안개처럼 퍼져 거리를 감아올릴 때, 뜻과 다른 걸음으로 물 위를 걷는 내 육체에게 나는 깊이 키스했다. 골목에서 청소부들이 깨진 병을 인구밀도만큼 쓸어담을 때, 흔들리는 영혼들과 만났다. 우리는 물 위의 거리, 홍등가에서 긴 사슬의 족쇄를 차고 빙빙 돈다. 골목 끝에서 붉은 불빛의 여자가 푸른 해시시 연기와 몸을 섞는다. 싸구려 호텔과 정적 사이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비명이 물 위에 비친다. 물은 고인 것처럼 보였으나, 바다는 지구의 한쪽에서 한쪽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자구는 자전과 공전에 목숨 걸고 있으므로, 그토록 거대한 진리는 우리를 목숨 걸게 했다. 술집마다 청춘처럼 피어오른 나뭇잎들이 제 몸을 태웠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허기를 인정했다. 삶을 지탱하는 내부의 진리. 해시시 연기처럼, 마른 나뭇잎에 매달려 온몸을 흔들며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한 세기의 영혼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지구가 돌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수천년 전에 몸을 태웠을 것이다. 뼛속에 맺히다가 원을 그리는 해시시 연기가 내 입가에서 말한다. 너는 오래전에 암스테르담에 중독되었다. 물 위의 생. 벗어날 수 없는 진리의 끝.
-《평일의 고해》(창작과 비평, 2006)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
정영 시인 / 피에타 ―어떤 손이 있어 우릴 무릎에 앉혀 가엾이 여길까
비밀이 생긴 건 말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것이어서
피를 바꾸고 싶은 짐승들은 밤마다 사막에서 몸을 앓는다
무얼 나눠 먹으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비참하지 않을까
헌 망토를 둘러쓴 맨발의 당신이 나여서 누군가의 손을 훔치는 푸르스름한 당신이 나여서 나와 당신이 부여잡고 걷는 동안 우리의 내장을 끓여 파는 게 우리여서 그걸 먹고 잠드는 게 우리여서
입을 닫는다 서걱대는 열망을 가득 물고
서로의 몸을 무릎 위에 올리는 갸륵한 꿈을 헤매는 동안 바람이 심장을 만지작거리다가 체온을 묻혀간다
그러면 나는 어느 사막의 어느 사구의 어느 모래무덤의 어느 모래알의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나를 못 알아볼 수 있을까
무릎을 숨긴 치맛단 같은 알을 품은 새들의 눈이 더는 슬프지 않을까
사는 내내 비밀이 생기는 건 버리고 싶은 몸이 하나씩 는다는 것이어서
숨을 참을수록 비참하다
-《화류》(문학과 지성,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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