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대 시인 / 여수에서 -김성오 시인에게
바다로 갔다 집을 떠날 때의 가벼움이 소금물에 절어 무거워질 때 하얀 소금꽃 필 때 바다까지 한 배낭 짊어지고 여수 밤바다에 도착하였다 파도칠 때마다 배낭 가득 짊어진 바다가 출렁거렸다
짐을 풀어놓고 창문을 열면 세상 다 파도인데, 열세 살에 가출해서 배낭 속에 늘 바다를 짊어지고 살던 너에게 파도 아닌 곳 있었을까
집을 떠날 때의 가벼움도 울컥, 파도 한번이면 온몸 소금꽃이 피는데 소금물에 절어 목선처럼 무거운데 늘 파도인 너는 어느덧 소금덩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한 삼 년 소낙비면 고 소금덩어리 다 흘러내릴까
여수역 근처 여인숙같은 집으로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진영대 시인 / 술병처럼 서 있다
주방 모퉁이, 싱크대 옆에 늘 있었던 것처럼 술병이 하나 서 있다. 평소 술을 못 마시던 어머니 제사상에 초헌하고 아헌, 종헌하고도 첨작까지 하고도 반 이상 남은 채로 술병이 하나 서 있다. 밀봉의 마개 한번 열린 후로 술병은 쓰러질 수 없다. 굴러다닐 수 없다. 남은 대로 서서히 김이 빠지면 식구들은 슬쩍슬쩍 술에 취한다. 아내나 아버지나 그리고 나는 한 잔의 음복술도 마시지 못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술에 취한다. 술병이 비고 쓰러질 때까지 아내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술병처럼 서 있다
-동인시집 『달을 먹은 고양이가 담을 넘은 고양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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