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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종훈 시인 / 구멍 난 문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6.

한종훈 시인 / 구멍 난 문장

 

 

구멍 난 이불을 덮고 또 덮었다,

한 문장 쓰다가 ‘구멍 난’을 지우는데

 

밥은 먹었나,

어머니 전화가 냉장고를 훑는다

 

쉰내 나는 김치

곰팡이 낀 장조림

바람 소리 나는 소주병

말라버린 피자 한 조각

 

그럼, 뜨끈뜨끈 쌀밥 해서 삼겹살 구워 먹었지,

 

쓰다 만 문장을 다시 채운다,

구멍 난 마음이 추워서 이불을 덮고 또 덮었다

 

계간 『시에』 2021년 겨울호 발표

 

 


 

 

한종훈 시인 / 젊은 고독

 

 

어디선가 혼자 사는 노인 집 문고리에

흰색 수건을 걸어둔다고 한다

어느 날 흰색 수건이 보이지 않는다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문 틈 사이로 빼곡히 박힌 흰 봉투들

코를 찌르는 냄새,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삶이 저문 걸 몰랐다

 

체납 고지서가 수거한 서른둘,

이력서 한 장에 적힌 생애가

너무도 짧아

 

옷걸이에 걸어둔 검은색 넥타이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계간 『시에』 2021년 겨울호 발표

 

 


 

한종훈 시인

경북 상주에서 출생. 2021년 《다층》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