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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영철 시인 / 박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17.

최영철 시인 / 박새

 

 

아침마다 물 받으러 가는 마을

무허가로 들어와 어우린 자연 부락 능선 따라

이른 아침 가방 메고 푸드덕 산을 넘는 아이들

짹짹짹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뒷산 보고 인사 꾸벅

지지쌕쌕 구구단 중얼대며

아직 단잠 든 평지 친구 머리맡 훌쩍

오늘은 뭘 읽을까

오늘은 뭘 쪼을까

잠 깬 청설모 뒤를 쫓아

푸드덕 산을 넘는 아이들

 

 


 

 

최영철 시인 / 일광욕하는 가구

 

 

지난 홍수에 젖은 세간들이

골목 양지에 앉아 햇살을 쬐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번도 없었을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구멍 뚫린 퇴행성 관절이

삐걱거리며 엎드린다

그 사이 당신도 많이 상했군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록거린다

풀죽고 곰팡이 슨 허접쓰레기,

버리기도 힘들었던 가난들이

아랫도리 털 때마다 먼지로 풀풀 달아난다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최영철 시인

1956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외, 육필시선집 『엉겅퀴』와 산문집『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가 있음.  백석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수상. 부산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