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숙 시인 / 닫힌 방의 호흡법
이별의 의식을 치르는 그녀의 방은 일종의 홈드라마야 이를테면, 찰칵 방문을 잠그고 소리 없이 흐느끼는 독백 같은 방의 태도에는 방문 밖에서 두드리는 노크 소리도 소용이 없어
그때 방은 문 틈새로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숨죽이며 어깨를 수시로 들썩이겠지 그 소리는 문밖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겠지 굳게 다물고 있는 방문은 쉽게 열리지 않겠지 방은 저 홀로 아무도 모르게 흐느끼는 거니까
그러다가 방은 침대 커버에 쌓인 먼지에 숨이 멎겠지 울음을 멈추고 갑자기 일어난 그녀는 닫힌 방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겠지 밖에는 방금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하겠지 그녀는 침대 커버를 들고 창문 밖으로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겠지
그리고 그런 다음에 방은 막혔던 숨을 몰아쉬겠지, 그런 후 문밖으로 그녀를 슬쩍 토해내겠지
웹진 『시인광장』 2022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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