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림 시인 / 마중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허림 시인 / 꽃의 뒤끝을 걷다
봄이면 꿈이 꿈틀거리던 뒷길 꽃의 뒤끝을 따라왔다 옛날 부엉이 울던 저녁이다 길에 묻어둔 발자국들 꽃잎처럼 날린다 먼 산 잔설 찬바람에 묻어난다 노을이 천천히 어둠으로 깊어지고 꽃 비린내 흥건한 저녁은 적막하다 바람이 마른 갈대를 쓰다듬는다 꽃은 이미 향기도 체온도 미적지근하고 가지마다 푸른 등을 내건다 뒤끝은 가물가물하다 마음에 둘 일이 아니다 뉘우칠 일은 더욱 아닌데 점점 무거워지고 어둠에 누운 길의 저쪽에선 끝을 알 수 없는 물소리가 들렸다 꽃의 뒤끝이 멀리 흩날린다 가끔씩 꽃잎이 날아와 이마를 더듬는다 눈물처럼 꽃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이별이 아름답다 너는 말할 수 있는가 어둠처럼 천천히 두벅두벅 걷는 어깨위로 꽃잎이 내려앉는다 옛날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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