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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림 시인 / 마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2.

허림 시인 / 마중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허림 시인 / 꽃의 뒤끝을 걷다

 

 

봄이면 꿈이 꿈틀거리던 뒷길

꽃의 뒤끝을 따라왔다

옛날 부엉이 울던 저녁이다

길에 묻어둔 발자국들 꽃잎처럼 날린다

먼 산 잔설 찬바람에 묻어난다

노을이 천천히 어둠으로 깊어지고

꽃 비린내 흥건한 저녁은 적막하다

바람이 마른 갈대를 쓰다듬는다

꽃은 이미 향기도 체온도 미적지근하고

가지마다 푸른 등을 내건다

뒤끝은 가물가물하다

마음에 둘 일이 아니다

뉘우칠 일은 더욱 아닌데

점점 무거워지고

어둠에 누운 길의 저쪽에선

끝을 알 수 없는 물소리가 들렸다

꽃의 뒤끝이 멀리 흩날린다

가끔씩 꽃잎이 날아와 이마를 더듬는다

눈물처럼 꽃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이별이 아름답다 너는 말할 수 있는가

어둠처럼 천천히 두벅두벅 걷는

어깨위로 꽃잎이 내려앉는다

옛날에도 그랬다

 

 


 

허림 시인

강원도 홍천 출생. 강릉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198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2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 『울퉁불퉁한 말』 『말 주머니』 『이끼, 푸른 문장을 읽다』 『거기, 내면』 『엄마 냄새』 『누구도 모르는 저쪽』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활동지원금(2007년), 문학나눔 복권기금(2012년, 2013년)을 받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A4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