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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성학 시인 / 낡고 오래된 파자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2.

윤성학 시인 / 낡고 오래된 파자마

 

 

사는 게 파자마 같다

어디에 벗어두어도 상관없다

구겨지거나 늘어나거나 색이 바래면서

몸이 파자마에 길들여진다

앞도 없고 뒤도 없다

사는 것은,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뿐이다

 

여기저기 솔기가 터진 파자마를 보다 못한 아내가

새 파자마를 사왔다

파자마 속으로 퇴근하는 저녁이면

파자마는 아내보다 나의 체형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두 번만 입어보면 안다

형상기억합금 브래지어처럼

내 몸의 정보를 고스란히 모방한다

누구라고 밑도 끝도 없이

앞뒤 없이 살고 싶겠는가

누구라고 날이 선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파자마를 보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생활의 솔기가 여기저기 터진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 내가 보이기에

무뎌짐도 익숙해지면 그뿐이란 걸 알기에

 

 


 

 

윤성학 시인 / 장어구이

 

 

꼬리부터 먹어라

남자한테 이게 그렇게 좋다네

 

일부러 수문 열어놨지?

그깟 팔당댐

그렇다고 못 갈 거 같아?

이 꼬리로 한달음에 치고 올라가

지 몸만 챙기는 놈들

어디 가만두나 봐라

 

 


 

윤성학 시인

1971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화일보》신춘문예에 〈감성돔을 찾아서〉등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당랑권 전성시대』(창작과비평사, 2006). 『쌍칼이라 불러다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