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림 시인 / 몬떼비데오 광장에서
일요일 아침 물에 빠져 죽고 싶다는 어린 애인의 품속에서
나는 자꾸 눈을 감았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술집에서 나라 이름 대기 게임을 하면
가난한 나라만 떠오르고
누군가 내 팔뚝을 만지작거릴 때 이상하게 그가 동지처럼 느껴져
자주 바뀌던 애인들의 변심 무엇이어도 상관 없었다
멀리 떼 지어 가는 철새들
눈부시게 흰 아침
주하림 시인 / 반달 모양의 보지*
1
챙 넓은 모자 검은 모발 희고 커다란 코 입이 귀까지 찢어진 죽음을 보았네
2
경기도에 산다고 했다 넋 나간 목소리 혀 꼬인 발음이 어둠 속에서도 반듯한 나를 더듬더듬 짚어가는데 그러나 언니...... 미안해요 난 벌써 약에 취했어요 도나웨일 노래를 듣고 있어요 mi, ZBC. HYUNGIN25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게 수면제 그러니까 언니...... 대화라는 건 어렵지만 늘 내가 그린 그의 초상화를 가까이 두고 있어요 그가 왼쪽 눈을 감을 때 단숨에 스케치해나갔던, 너는 뭐 때문에 죽고 싶니 외로워 불쌍해? 실연이라 말하면 우리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나요? 같이 술을 마시고 포켓볼을 치며 쓸모없는 남자들을 꼬시며 언니 ...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사는 걸까
3
아니 여전히 있네 옆으로 나를 씨익 쳐다보며 검은 나비 떼를 부르고 혀 잘린 코브라를 부리지 나는 나뭇잎 그림자처럼 떨다 정말 나뭇잎 그림자답게 고요해졌다 수천개 나뭇잎 그림자처럼 복잡해졌다가 더는 기억을 새기지 않는 몸이 네가 벗어놓은 거웃과 삐딱하게 어울리네 우린 서로에게 줄 것이 추위와 고통밖에 없었을까
4
저녁 여덟시 이후에 전화 줘 언니가 뭐 하는 사람인지 진짜 언니인지 동생인지 죽고 싶은 사람인지 실은 뜻밖에 사랑해도 되는 사람인지 울기 전에, 살고 싶은 내 몸은 거짓말을 해버리고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리고베르또 씨의 비밀노트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란 시인 / 새의 의미 (0) | 2022.11.26 |
---|---|
신해욱 시인 / 음악이 없는 실내 외 1편 (0) | 2022.11.26 |
홍예영 시인 / 토끼, 굴을 파다 외 1편 (0) | 2022.11.25 |
박종영 시인(청주) / 껌 씹는 낙타 외 1편 (0) | 2022.11.25 |
김효선 시인 / 이어웜 (0) | 202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