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라 시인 / 유리
최선을 다해 깨지고 싶었다
내가 유리창인 걸 그가 알 수 있도록 음이 높은 앵무새를 키웠다
애인은 투명하고 깨지기 쉽고 두께를가지고 차가운 심장을 갖기 위해 창을 더듬는다
창문 끝자락엔 깜깜한 밤이 눌러 붙어 손금을 문지를 때마다 별이 돋아 땅에 떨어졌다 우린 그런 방식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즐거이 탕진했다
아직 빛나고 있을까 우리가 떨군 별들 나는 잊은 체했고 애인은 정말 잊은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사랑에 틈을 주는 일이라는 걸 주장하지 않고 아름다운 실패를 반복하게 했다
나는 우기에 있고 애인은 또 다른 우기로 건너간다
사포와 고양이의 혀, 각질이 가득한 여관 시트를 넘어 유리와 같은 온도의 시체처럼 누워 안쪽과 바깥은 이어지는 풍경이기 바라는 마음을 여전히 품은 채 나는 우기에 있고 애인은 또 다른 우기로 건너간다
앵무새는 누구의 말도 따라하지 않았다 무너진 눈시울을 들킬까봐 발끝을 만졌다
—《예술가》2017년 가을호
최세라 시인 / 사이다 병 조각이 박힌 담장
당신은 나의 담장을 빌려서 다시 도둑고양이 두 마리에게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느라 담장 위에 꽂힌 칠성사이다 병조각은 모조리 깨어져 나가고, 내 집의 망치와 끌과 사다리는 골목 밖에 널브러졌습니다. 나는 비린 조기를 훔쳐 온 고양이들에게서 고단한 입 냄새를 임차료로 받았습니다. 밤에 정전이 찾아온다면 가로등 대신 병조각 대신 별들이 담장 위에 박힐 것입니다. 당신은 내게 그것들을 조금 떼어 줄 테지만, 우리 사이 잠깐 담이 없었음만이 나는 무한히도 기뻐 밤새 한 걸음도 걸어 나가지 않고 컴컴한 안구 뒤로 기꺼이 침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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