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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종규 시인 /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6.

송종규 시인 /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꿈속에서 본 사람의 얼굴은 빛들의 얼룩으로 눈부셨지만 슬픔으로 터질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오래된 액자였던 거 같기도 하다

 

 넓은 들판에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커다란 접시였던 거 같기도 하고 풍차였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는 공원의 벤치들이 햇빛을 받고 있는 여름 한낮이었는데 아버지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가셨다

 방울토마토가 바구니 안에 소복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햇살에 익어가는 맨드라미, 아니면 먼 바다 기슭의 하얀 포말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 본 풍경들은 자주자주 엉뚱한 방식으로 진화하거나 번져나간다, 마치 뜨거운 마가린처럼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그것은, 기억이나 환영 같은 거

 그러므로 나는 꿈꾸는 구름

 

 시간의 지층이 삐끗했거나 기억의 오류이거나 잘못 연결된 코드처럼

 

 나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영원이라고 발음하면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모든 구름에는 물기가 묻어있다

 

계간 『문파』 2020년 겨울호 발표

 

 


 

송종규 시인

1952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효성여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고요한 입술』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 『녹슨 방』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이 있음. 2005년 대구문학상 과 2011년 제31회 대구시 문화상(문학부문), 2013년 제3회 웹진『시인광장』 시작품상, 2015년 제13회 애지문학상, 2017년 제10회 웹진『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