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꿈속에서 본 사람의 얼굴은 빛들의 얼룩으로 눈부셨지만 슬픔으로 터질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오래된 액자였던 거 같기도 하다
넓은 들판에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커다란 접시였던 거 같기도 하고 풍차였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는 공원의 벤치들이 햇빛을 받고 있는 여름 한낮이었는데 아버지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가셨다 방울토마토가 바구니 안에 소복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햇살에 익어가는 맨드라미, 아니면 먼 바다 기슭의 하얀 포말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 본 풍경들은 자주자주 엉뚱한 방식으로 진화하거나 번져나간다, 마치 뜨거운 마가린처럼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그것은, 기억이나 환영 같은 거 그러므로 나는 꿈꾸는 구름
시간의 지층이 삐끗했거나 기억의 오류이거나 잘못 연결된 코드처럼
나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영원이라고 발음하면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모든 구름에는 물기가 묻어있다
계간 『문파』 2020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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