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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상인 시인 / 열하루 밤의 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6.

이상인 시인 / 열하루 밤의 달

 

 

달에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때론 달도

뒤돌아서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는 거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

 

-시집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에서

 

 


 

 

이상인 시인 / 뻐꾸기 둥지

 

 

막 동이 틀 무렵

아랫배에서 뻐꾸기가 운다.

명치 쪽으로 올라와 울기도 하고

편히 자리를 잡고 쉬엄쉬엄 운다.

혹시 나는 누군가

다른 둥지에 낳아둔 알은 아니었을까

태어나기 전의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내 주위에서 잊지 말라고

때때로 울어주고 있는 이는 없는지

잠시 주위를 접었다 펼쳐 보는 사이

뻐꾸기 울음은 그칠 기미도 없이

 

나는 또

어느 둥지에 남몰래 한두 개

내 마음을 낳아두지 않았을까

그 마음, 껍질을 깨고나와

덜 깨어난 마음들 둥지 밖으로 밀어내

간단없이 죽이고

무럭무럭 자라서 다시 날아오라고

끊임없이 울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부질없는 생각들 추스르고 있을 때도

내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며

뻐꾸기는 울음 울어

새벽이 뻐꾹뻐꾹 밝아온다.

 

 


 

이상인 시인

1961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1992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산마을 학교〉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해변주점』, 『연둣빛 치어들』, 『UFO 소나무』, 『툭, 건드려주었다』 『그 눈물이 달을 키운다』가 있음.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제5회 송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