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25주일 - 하느님 만세!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이사 66,18-21 / 제2독서 히브 12,5-7.11-13 복음 루카 13,22-30 가톨릭신문 2022-09-11 [제3310호, 19면]
양보하고 내려놔야 하는 일상의 순교 믿음과 희망으로 얻는 사랑의 열매 공포와 죽음도 이겨냈던 믿음의 힘 주님만을 향하던 순교 정신 본받길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문학진 화백 작품).
한국의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을 추앙하며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신앙의 처절함을 다시 새기는 날입니다. 특히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의식의 밑바닥을 헤집어 진리를 살아내신 선조님들의 숭고하고 치밀했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본받고자 다짐을 하게 됩니다.
꽤 오래전 가을, 며칠 시간을 내어 작은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수도원에 짐을 풀었습니다. 뜰에 심긴 나무마저 수도자들의 기도처럼 정갈하게 다듬어진 그곳에서 정작 제 마음을 끈 것은 뒷산에 있는 키 작은 나무였습니다. 나뭇등걸에는 검게 혹은 움푹 파인 상흔이 고스란했는데요. 그 아픈 상처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나름의 열심을 품고 사제생활을 하던 그때, 문득 신학생 시절에 들었던 스승님의 말씀이 저를 몰아치는 중이었으니까요. “매일 살아내는 일상이 순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순교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힘들었습니다. 사제이기에 지녀야 할 품격과 품위, 사제이기에 감당해야 할 직무의 무게를 오직 순교하는 마음으로 살아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이르신 일상의 순교란 매번 지고 맨날 양보하며 건마다 내려놓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무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전혀 그러하지 못하고 지내는 제 모자람이 크게 부끄러웠습니다. 못한다… 못하겠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겠다… 머리를 흔들어댔던 것도 같습니다. 수없이 가슴을 내리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도망치듯 성경을 읽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 마음이 멈췄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 간절히 우리가 당신과 당신의 말을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라시는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곧바로 “부끄럽게 여기면”이라는 부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으로 바꿔 읽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만으로 주님께서도 우리를 자랑해주실 것이란 얘기입니다. 이 쉬운 방법을 놓치고 지냈구나 싶었습니다. 주님을 자랑하기만 하면 되는 이 쉬운 걸 놓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아까웠습니다. 당장 실천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하느님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비몽사몽 중에서도 “예수님 최고”라며 자랑해드리며 눈을 떴습니다. “우리 성모님이 너무 좋아요”라는 추임을 넣으며 세상을 깨우는 기도이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연애는 삶이 주는 무상의 선물이고, 생명의 축복이다. (…) 우리는 연애라는 다리를 건너서 사랑이라는 섬으로 간다”라는 글을 베껴 간직했습니다. 그 순간, 믿음이란 예수님과의 연애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애란 상대방을 애틋하게 사모하여 사귀는 것을 의미하니 틀림없다 싶었습니다. 모든 순교는 주님과의 열애심이 솟구친 결과임을 비로소 이해했던 것입니다. 엄청난 무게로 휘몰아치는 수난도 주님을 더욱 연모하는 마음으로 이겨낸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일상의 순교도 “꿀같이 달콤하고 즐거운” 밀애의 관계라면 전혀 힘들지 않을 것이란 진리가 마음에 쏙 담겼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며 매일 그분과 연애하는 사이이니까요. 그분과의 밀애를 즐기며 매일매일,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궁리를 하는 게 행복할 테니까요.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소관입니다. 세상의 어느 인생도 시작과 마침을 스스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는 꼭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에게는 하느님께서 부여해주신 역할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에 걸맞은 구실과 노릇을 해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 살필 때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이렇게 늘 은혜로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리는 일이라는 점이 매우 자명해집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믿음인의 찬미이며 화답이었다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지금 마음이 다소 복잡해집니다. 순교자 선조님들의 삶에 비추어 제 사랑이 너무 쉽고 가벼운 것이 송구스러운 겁니다. 순교란 믿음과 희망을 통해서 얻어지는 사랑의 열매임을 알고 있지만 그분만을 사모하고 사랑했던 까닭에 당해야 했던 순교자들의 고통은 너무나도 혹독한 실제상황이었으니까요. 주님을 깊이 연모하고 한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이 악랄한 고문의 깊이를 덜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공포는 이를 악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불러도 결코 작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그 무엇이 자신의 생명마저도 아까워하지 않는 결단을 갖게 했을까요? 또 어떠한 것으로 죽음을 불사하는 믿음을 지켜낼 수가 있었던 것일까요?
이 의문은 오직 믿음 안에서 열렬히 주님을 사랑할 때,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답을 찾는 마음으로 죽음은우리에게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시작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주님만을 향해서 주님만을 바라보던 순교자들의 시력을 가지려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과 희망의 종착역인 천국을 더 깊이 사모하며 매일, 주님과의 데이트를 즐길 것입니다. 이 소박한 다짐이 애인 예수님께 기쁨이기를 바라며 제 연인 예수님이 보내주신 ‘연서’를 공개합니다. “정녕 당신은 아름다워요, 나의 연인이여. 당신은 사랑스러워요”(아가 1,16).
우리의 연인, 예수님은 너무너무 멋진 분이심에도, 모자란 우리를 이렇게나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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