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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운기 시인 / 담배 10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25.

고운기 시인 / 담배 10년

 

 

자동차 고치러 갔다가

왼쪽 가슴 주머니의 담배

슬그머니 바지 주머니에 숨긴다

정비소 주인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집사

속이자는 것이 아니라

왠지 그에게 모욕을 주는 일 같았다

들아오며 생각하니

담배 피운 지 10년

남들 끊을 나이에 시작한 늦담배가

쓴 내 인생의 이력서이다

때로 눈치보며

연기처럼 흘려보낸

 

 


 

 

고운기 시인 / 익숙해진다는 것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고운기 시인

1961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 졸업.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신화 리더쉽을 말하다』 『모험의 권유』 등이 있음.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2007.~2008. 일본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객원교수. 현)한양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