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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율 시인 / 서鼠, 2011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30.

김지율 시인 / 서鼠, 2011

 

 

 그리운 쥐덫

 

 바람이 곳곳에 튼튼한 씨앗을 퍼뜨렸어요 쥐들이 씨앗을 다 까먹기 전에 쥐덫에 놓인 디저트를 먹고 변한 판타스틱 공룡스토리

 

 그리하여 별이 빛나는 밤에 휘파람을 지나 들판을 지나 너구리 아이스께끼를 지나 대머리를 지나 다정한 와플을 지났어요 시치미 전전긍긍을 지나 초록 검정 유통기한을 지나 지그재그 단수와 복수를 지나 조심해를 지나 3초 전 혹은 3초 뒤에,

 

*월간 <현대시> 2011년 2월호

 

 


 

 

김지율 시인 / 매직 캣

 

 

검은 보자기에 손을 넣었는데 종아리가 길어졌다

 

검은 보자기에 뜨거워를 넣었더니 수박 한 덩어리가 나왔다

 

됐어?, 응 좀 더 세게 당겨봐

 

검은 보자기 속에 보자기를 넣었더니, 무서워

 

검은 보자기 속에 숨었는데 언니들이 모두 집을 나가버렸다

 

날마다 낮이 짧아지고 기억은 더 짧아지고

 

터지는 웃음을 참다가 길어진 앞발을 들어 악수를 시작했다

 

 


 

 

김지율 시인 / 다몽(多夢)

 

 

면회시간 20분

만지면 따뜻할까 다정한 귓불처럼

떠도는 말들이 다시 귀환하고 있다

그 말들이 조금씩 우리를 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주먹은 빠르게 자라서 뛰기 시작한다

주먹은 뜨겁고 주먹은 단단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슬리퍼를 신은 발로 얼마나 뛸 수 있겠니

 

어·쩔·수·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좀처럼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군요

 

그림물감

여전하시군요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그림을 모르게 되지요

덧칠하고 또 덧칠을 하면 결국

존경심이 사라집니다

 

종종

꼼꼼한 인사방식이 불쾌할 수 있으니

무국적 회화방식에 대해 고민해야겠어요

어떤 꿈을 꾸는지 물어보셨나요

 

문득

옆을 쳐다보니 당신도 버려진 사람이군요

때와 장소에 따라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한 쪽 눈만 깜빡이는 스타일이죠

그러니 당신도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다중인격

제곱은 오늘도 바쁘다

 

 


 

김지율 시인

1973년 경남 진주 출생. 경상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2009년 ‘시사사’로 등단. 첫 시집 『내 이름은 구운몽』(현대시), 2013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음. 제58회 개천문학상 수상. 서울논술학원 원장. 화요문학회 회원. ‘형평문학’ 편집장. 경상국립대 인문학연구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