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호 시인 / 시인
어둠이 닳아서 새하얀 빛이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투명한 그물이 촘촘하게 날 에워쌀 때까지
시를 쓰다가 시가 되지 않는 말들과 함께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어느 먼 곳을 꿈꾸는 시간
닳다 만 어둠 같은, 더는 깊어지지 않는 절망 같은,
꽃 피지 않을 생각이 되지도 않게 시가 되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가며 어떻게든
어둠이 다 닳을 때까지 절망이 더는 깊어지지 않을 바닥에 누울 때까지
어떤 꿈도 더는 나를 가두지 못할 눈물의 바탕에 기어이 다다를 때까지
단 하나, 시인이라는 휑하니 빛나는 이름을 갖게 될 때까지
그것마저 죄다 떨쳐낼 때까지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려는 것
- 《문파》 2022년 가을호
박완호 시인 / 급훈 뒤집기
급훈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숙여서 발을 보지 말라.
당연하다는 듯 누구에게나 별을 보라고, 별만 보라고 서로 얼마나 다그쳐왔던가?
되려 이제는 고개 숙여 발을 보라고,
제 발에 뭐가 묻었는지 어디를 무엇을 밟아가며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할 때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든 제대로 가기 위해선 별을 올려보듯 발을 봐야 하리
고개 숙여 제 발을 보는 사람만이 마음속에 뜨거운 별을 마주치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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